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Feb 13. 2019

박서운이라는 할머니의 이름

- 이름 이야기

어머니가 일하시는 곳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다. 어머니는 할아버지 이름들은 멀쩡한데다 한자도 좋은데 할머니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촌스럽거나 성의없어서 가끔은 씁쓸하고 착잡하다고 하셨다. 대체로 할머니들의 이름은 막순, 끝순, 말년, 말자 같은 것이라고. 거기에는 더 이상 딸을 낳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미 태어난 딸에 대한 원망과 실망만 있다. 그들은 실망과 원망을 담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하루는 할머니의 이름이 박서운 이시라길래 어머니는 "어머님 이름이 참 예쁘시네요." 라고 말했다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그렇냐고 물으셨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어머님 세대에는 끝순이니 말년이니 촌스러운 이름이 많은데 옛날 이름답지 않게 세련됐어요"


할머니는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 별 표정도 없이 건조한 말투로 몇 마디를 뱉으셨다고.


"세련은 뭘. 아버지가 딸 낳은 게 서운해서 지었다는데."

어머니는 민망함에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단다.


1993년 일본에서는 아들의 이름을 악마로 지은 아버지가 있었다. 한자도 악마 그대로였다. 시에서는 법원의 자문을 얻어 해당 이름 사용을 거부했다. 아동 복지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 아버지는 이에 불복해 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국은 패소해서 아이가 악마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되는 일은 없었다.


자식의 이름에 자신의 서운함과 악마를 담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서운이라는 할머니의 이름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비의 그 무책임함에 안타까웠다.


내 위로 친 형이 하나 있다. 우리 형의 이름은 '우주'다.

어릴적 우리가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왜 이름을 우주라고 지었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하신 대답은 따뜻한 목소리까지 생생하다.


"엄마가 우주를 가졌을 때. 정말 온 우주를 얻은 것처럼 기뻤거든"


우리 형은 온 우주 만큼의 행복을 이름에 담고 살아간다. 나는 서운이라든가 말년이라는 이름과. 또 우리 형의 이름을 번갈아 떠올리면서 이름이 주는 그 무거움에 대해 또 한 번 절실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씨가 아니었더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