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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27. 2019

저들도 섹스를 했다니!

- 차마 글로만 전할 수 있는 생각

누구나 음탕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남이 되어본 적은 없어서 정말 ‘누구나’ 그러한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튼.


누구나 음탕한 생각을 하는 것과 별개로 그걸 말로는 내뱉지 않는 편이 좋다. 여성과 둘만 있을 때는 야한 이야기가 더러 도움이 될지라도 일반적인 경우에는 대체로 마이너스가 된다. '평판' 같은 것이 좋아질 리 없다. 나는 나름대로 현명한 사람이라서 야한 생각은 늘 혼자서만 한다. 평균에 비해 잦은 편인지 드문 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자주 한다. 만약 모두가 나와 같은 정도라면 세상에는 정말 대단한 연기자들이 모여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다들 그렇게 멀쩡한 척을 하면서 산다니. 특히 내가 자주하는 생각이 있는데,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이라서 늘 혼자서만 꾸준히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쯤은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뱉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미다스 왕의 이발사는 갈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소리쳤고, 나는 브런치에서 ‘저들도 섹스를 했다니!’하고 소리친다.     




처음 ‘야동’을 볼 때의 이야기부터 하자.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야동’을 처음 봤다. 조금 이른 편일수도 있는데, 우리 동네 남자아이들은 다 그 정도에 봤다. 정규 성교육을 받기 전에 일종의 사교육을 받은 셈이다.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일 텐데, ‘야동’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숨겨오듯 신문물을 먼저 접하고 소개하는 친구들을 통해 전파된다. 동네마다 그런 친구들이 꼭 한 명씩 있었다. 우리 또래의 문익점이 나에게 당도하기도 전에 나에게는 한 학년 터울의 형이 있었다. 형과 형의 친구들이 음란물을 보는 시간에 나도 자연스레 끼어서 청강을 했다. 형들은 당시의 트렌드를 따랐고 나는 1년 정도 월반을 한 셈이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문익점이 되어 여기저기 ‘야동’을 전파했다.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신기해하면서 보통은 친구들과 같이 봤다.    

 

섹스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렇게 자극적인 영상을 봤으니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굉장히 더럽고 역겨웠던 기억이다. 털도 더러웠고, 헐떡이는 두 남녀의 표정도, 호흡도, 몸짓도 모두모두 역겨웠다. 내 주변의 어른들은 나름대로 교양이란 게 있었는데, 저 어른들은 짐승같이 굴었다. 그런데 대뜸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섹스를 해야 아기가 생긴대”

나는 그런가보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 엄마아빠도 저 짓을 했다고?”

하고 물었다. 친구가 대답했다.

“그럴걸?”

그렇다. 도 아니고 그럴걸? 이라고 했다. 나에 대한 배려였는지 자기도 확신이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동안 심란해하면서, 우리 엄마 아빠도 저걸 했다니. 그런 생각에 잠겨 살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즈음해서는 확실히 알게 되었고, 부모님께 조금 섭섭(?)해졌다.      


그때부터 지금껏 섹스와 무관할 것 같은 사람들의 섹스를 신기해한다. 언젠가 너무나 교양 있고 품위 있으셨던 담임 선생님이 학교에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나는 그 조그맣고 귀여운 아기보다 ‘선생님도 섹스를 했다니!’ 하는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스무 살이 넘어 어느엔가 첫경험을 하고 나서, ‘아니, 내가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차분하고 상냥한 대학 선배가 남자친구와 2년째 사귀고 있다는 것을 듣고 ‘저 누나도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너무나 병약하게 마르고 기운 없는 형이 있었는데, 여자친구와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서는 “이 형도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한번은 텔레비전에서 한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보았다. 이라크 파병으로 양 발을 모두 잃은 그는 양 무릎 위쪽으로 다리를 절단해서 걸을 수도 없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결혼 후에는 자신을 닮은 예쁜 딸도 얻었다. 화면 속으로 단란한 가족사진이 표시됐다. 나는 그런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를 보면서도 ‘와. 섹스는 어떻게 했을까.’ 하며 그들의 잠자리와 체위를 상상했다.     


시사토론프로그램의 패널들을 보면서 ‘저 모든 사람들이 섹스를 했다니!’ 생각한다. 교회를 다닐 때는 자신의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낸 목사님을 보면서 ‘저 목사님도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집사님 부부를 보면서 ‘저 집사님도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너무도 인자하신, 그리고 나에게 시(詩)라는 세계를 열어주신 교수님을 보면서도 ‘저 교수님도 섹스를 했다니!’ 생각했다. 대통령을 보면서도 생각했다. 스티비 원더를 보면서도 생각했다.  

   

“저들도 섹스를 했다니!”




 타인의 섹스를 상상하는 것은 본질적인 호기심에 가깝지만 그렇다면 왜 나는 모든 사람의 섹스를 상상하는가. 왜 그들의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모습을 상상하는가. 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신음소리와, 자세와, 나체를 상상하는가. 생각해보건대 그러한 상상이 나에게 늘 실망과 안도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섹스를 상상하면, 그들의 후광이나 고상한 이미지 같은 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저들 또한 그저 인간일 뿐이구나. 결국에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섹스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사람일 뿐이구나. 세상의 욕구에서 초연한 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듯 보여도 개인적인 욕구를 처리하며 살아가는 구나. 밤이면 그렇게 섹스를 하는구나. 섹스에 대한 생각은 도무지 엮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범우주적인 차원에서 엮어준다.


군대 가기 전, 친하게 지낸 누나와의 술자리를 기억한다. 어쩌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랬다. “세상에는 샤워하면서 오줌을 싸는 여자와, 샤워하면서 오줌을 싸지만 자기는 안 그런다는 여자. 이렇게 둘만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먹던 맥주를 조금 뿜으면서 웃었다. 그리고 기침을 하면서 한참이나 끄덕끄덕 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그게 놀랄 일이 아니듯이,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그런 당연한 생각을. 자주 하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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