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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02. 2019

환장하는 압존법의 추억

- 그게 별거라고

" 예를 들어, 네가 김 병장님한테 내가 한 말을 전하려면 '조상병'라고 하지 말고 '조상병이 ~랍니다.'라고 하는 거야"


군대에 처음 갔을 때는 '다나까'와 '압존법'이 제일 헷갈렸다.

전입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선임이 "야 서댐!" 하는 말에 깜짝 놀라서 "저요?"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대차게 까였다. 들은 선임이 하나뿐이었는데 비밀로 해주겠다더니 저녁에 선임들 다 알고 있었다. '요'자 한 번 썼다고 릴레이로 욕을 먹었다. 2시간 쯤 열 명한테 혼났던 것 같다. 정신이 너덜너덜해졌다. 배신감에 박상병 전역할 때까지 싫어했다.


다나까는 그날 하루 만에 깨끗이 고쳤는데 압존법은 더 어려웠다. 높은 사람과 더 높은 사람도 헷갈리는데 그에 따라  호칭도 바꿔야 한다니 나는 몇 주 동안 민주적으로 모두 다 높이다가 실컷 욕을 먹었다.


이 병장에게 "강상병 님이 PX가시는 것인지 물어보셨습니다."라고 했다가 " 강상병 님? 걔가 나보다 위냐?" 하면서 혼나는 식이었다.


선임한테 뭘 물어볼 때도 "~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라고 해야 했는데 이런 언어 양식이 너무 철저해서 지레 겁을 먹어 과잉 사용하는 경우도 잦았다.


내 동기 녀석은 "이수민 병장님 여쭤볼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가

"넌 한 번에 몇 번을 여쭈냐?"라는 대답을 들었다. 난 그걸 듣고 너무 웃겨서 혼자 풉 하고 웃다가 '개 빠졌다'고 또 엄청 혼났다.


그러던 나도 어느새 압존법과 다나까에 익숙해진 능숙한 병장이 되었다. 그 사이 신병들은 꾸준히 들어왔다. 그들 또한 나처럼 전입 온 후 한동안은 호칭 문제로 꼭 엄하게 혼이 났다.


하루는 절에서 큰 행사가 있으니 종교행사를 강제 참석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우리 소대는 다 같이 부대 근처 절로 향했다. 법회를 마치고 잠시 나와 쉬고 있는데 전입 온 지 얼마 안 된 이등병이 달려오며 말했다.


"서댐 병장님 스가 김밥 드시랍니다."

"어? 스가?"

"예 스가 김밥 있다고 드시랍니다."

"스가가 뭐야?"


이등병은 손가락으로 어느 쪽을 가리켰는데 거기에 스님이 한 분 계셨다. 아, '스'가...

"야이 병신아 스님은 스님이지 '스'가 뭐야"

"그 압존법..."


우리는 서로의 등을 치며 뒤집어지게 웃었다. 스님에서도 님자를 빼버리는 군대식 압존법 교육의 무서움. 그게 뭐라고 그렇게 혼내고 혼났어야 하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겨서 나는 그때의 그 녀석 표정을 떠올리며 낄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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