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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06. 2019

한 해의 시작을 오늘이라 치자

- 개구리가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을 맞아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며
물 치는 소리     

-마쓰오 바쇼-     


봄이다. 올 겨울은 겨울답지 않게 지나갔다. 살을 에는 추위도, 쏟아 내리는 눈도 없었다. 나는 겨울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났다. 외출에도 부담이 없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리고 봄이다. 겨울잠을 끝낸 개구리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는 절기. 도시에는 개구리 한 마리 없는데, 경칩을 신용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미는 있다. 오늘부터 봄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볼 수 없어도 상상할 수는 있는 것처럼, 개구리가 없어도 봄이 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람들은 계절을 뜻하는 우리말을 흔히 쓰지만 어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그 이름들에는 본질이 간결하고 명쾌하게 스며있다.     


봄에는 ‘본다’는 뜻이 있다. 겨울이 지나고, 눈이 걷히고, 싹이 움트는 것을 새로 보게 되는 계절.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계절의 순환에서, 봄은 아이가 눈을 뜨듯이 세계를 처음으로 보게 되는 계절이다.

열매가 열려서 ‘열음’인 계절은 시간이 지나 ‘여름’이 되었고, 추수한다는 뜻의 ‘가을’은 ‘추수한다’, ‘거둔다’라는 말이 변해 생겼다. 겨울은 너무 추워서 집에 계시는 계절이라는 뜻인데, ‘겨슬다’가 차츰 ‘겨슬’을 거쳐 ‘겨울’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습관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말한다. 순서상 가장 앞에 있는 계절은 반론의 여지없이 봄일 것이다. 그러니까 올 해는 사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해의 시작을 오늘이라 치자. 그렇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날이니만큼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게으름 때문에 마음 같지 않았던 나에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고 싶다.


올해 있죠. 올해 벚꽃 피겠죠? 여러분들이 벚꽃 구경을 안 가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내년에도 다시 피고, 작년에도 피었고, 재작년에도 피었고, 내가 죽어도 핀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은 가게 될 거예요.

“올해 피는 꽃이 작년에 핀 꽃이 아니고 내년에 필 꽃이 아니야.”     


철학자 강신주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의 벚꽃과 작년의 벚꽃이 다르다는 그의 말은, ‘봄’이라는 계절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그 이름대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볼 것.      
매년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할 것.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떠올리며, 나는 이번 봄을 처음 만나는 소개팅 상대처럼 낯설게 대해보려고 한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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