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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24. 2019

이 시간에 저러고 있는 거면 불륜이라고 했다

- 사이좋은 중년의 부부는 카페에 없는가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빙수를 먹고 있었던 2014년쯤의 여름밤, 창가 쪽에 앉은 중년부부가 우리보다 다정한 분위기로 빙수를 먹여주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 별로 안 좋으신데, 되게 보기 좋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먹자.”

“오빠, 이 시간에 저러고 있는 거면 불륜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가 늘 그렇게 말해, 볼 것도 없어”

“...”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한 말투였다. 나는 머쓱해져서 허허 웃었다.     


종로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던 2016년의 가을, 그때의 여자 친구와는 이미 헤어졌어도 시니컬하게 내뱉던 말만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비관적 추측을 나는 뒤늦게 매일 검증할 수 있었다.


카페 카운터에 있으면 거의 마네킹 취급을 받기 때문에 별의별 대화가 다 들렸다. 다소곳이 커피를 받아간 중년의 여성은 연신 남편의 머리를 쓸면서 대화를 경청했고, 남자는 부인의 볼을 꼬집었다. 로맨틱한 부부 좀 보라고 동료에게 말을 건넬 뻔한 찰나,


“그래서 자기, 그 여자가 이혼해준대?”

꼭 이런 대화가 들리는 것이었다.      


저녁에 종로의 카페에서 커피를 나눠 마시는 중년 커플들은 과장 조금 보태면 죄다 불륜이었다. 매일 몇 커플씩이나 봤다. 아내는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은 아내 욕을 했다. 마주 앉은 두 남녀는 서로의 배우자를 험담했다. 그 내용은 도무지 마흔이나 쉰의 연배답지 않게 유치했다. 사람의 갈등이라는 게 나이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또 한 쌍의 중년 커플이 카페로 들어왔다. ‘제발 아메리카노 시켜라.’ 주문을 외워서인지 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커피를 금세 만들어 벨을 울렸다. 남자가 커피를 받아갔다.      


둘은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시간이 늦어서 손님이 별로 없었다. 조금만 귀를 열면 대화가 거의 들릴 정도로 소음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심심했기 때문에(나는 사실 대화 엿듣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무슨 대화를 하나 그쪽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자극적인 이혼 계획이나 재산분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TV에서 나오는 이슈나 주변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얘기만 잠깐 주고받았다. 말도 없었다. 둘은 그냥 무뚝뚝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고, 여자가 자주 핸드폰을 꺼내 열어본다는 것을 빼면 큰 특징도 없는 모양새였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불륜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종종 이렇게 영화도 보고 하자고.” 아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럽시다.” 무뚝뚝한데 따뜻한, 그런 눈빛이었다. 남편이 다시 말했다. “금방 일 알아볼게.” 실직한 모양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담은 머쓱한 표정. 그러자 아내는 “당신 거기서 버티느라 고생 많았던 것 다 알아. 잘 될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하면서 남편을 위로했다. 둘은 마주 보면서 아주 짧게 웃었다. 부부는 다시 커피를 홀짝이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그리고 헐렁하게 팔짱을 끼고 나갔다.


유난스럽지 않게 다정한 모습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알 수 없게 가슴이 조금 뛰었 '사이좋은 중년 부부 있더라.' 이제부터는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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