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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02. 2019

반짝반짝 빛나서 반할 수밖에 없는 글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해야지

오늘은 삶에 대한 통찰과 유려한 표현이 돋보이는 아주 멋들어진 글을 쓰고 싶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평생 해보지도 못할 독특하고 엉뚱한 생각을, 진중한 삶의 철학과 뒤섞어서 가볍지만 무겁고, 무거운 듯 가볍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제목에 이끌려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이 사람 참 멋진 사람이네, 실제로는 어떨까?’라고 생각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런 시작부터 글러먹은 생각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 글이라는 건, 독자를 의식하는 순간 바로 망해버린다. 내가 완전한 의미의 나 자신이 되고, 내 스스로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게 되지 않으면, 글자들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멋져 보이려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 적도 적지 않았지만 한 번도 완성하지 못했다. 쓰다 보면 흉내를 내는 것만 같았고, 설령 어설프게 썼더라도 소리 내서 읽어보는 동안 자괴감만 가득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반짝반짝 빛나서 반할 수밖에 없는 글을 쓰려고 했던, 이 허세스러운 마음에 대해서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다 보면 내 글에 진심으로 감응해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댓글을 받게 되면, 사실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의 일부를 글로 훔치고, 심지어 심정적인 감동까지 주었다는 것에서 깊은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조그만 영향이라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놀랍고 기쁜 일이다.     


떠오른 대로 썼을 뿐인데, 내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감탄을 해준다든가, 현실 속의 나를 멋지게 상상해준다든가 하면 뒤늦게 기분이 붕붕 떠서 잔뜩 기세 등등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곧 깨닫게 된다. 글을 잘 쓰거나, 내가 대단한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한 바, 글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밀은 단지 솔직함에 있었다. 누군가의 심장에 가닿았던 나의 글들은 그저 솔직했을 것이다. 그 솔직한 마음이 타인의 마음에 가식 없이 와 닿았을 테다.      


세상에는 솔직한 마음이 부족하다고 자주 생각한다. 솔직한 것도 연습이 필요해서, 솔직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능력을 점차 잃게 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솔직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통과의례처럼 잃게 된 것 같다. (세상엔 솔직함이 어느 정도는 무례함과 동의어로 쓰이는 경향도 있다.)     


무례하지 않게 솔직하기란 참 까다로운 일이라서, 복잡한 사회생활 속에서 완전히 솔직하기는 어렵다. 나도 하루에 착한 거짓말, 나쁜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한다. 앞뒤 없이 솔직했다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자괴감을 느껴가면서도 어찌할 도리 없이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 쓰는 글에서도 솔직하지 못할 뻔했다. 타인에게 솔직하기 어렵다면, 내 자신에게라도 솔직해야 할 텐데. 흰 바탕 종이 위에서도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니 아주 큰 일 날 뻔했다. 그래서 오늘은

'세련된 글로 조금 멋져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는 글을 반성문처럼 쓰면서 스스로에게 벌주려고 한다.      


얼마 전엔 유언을 생각했다, 당장 죽게 되면 어떤 말을 남기는 게 좋을까 문득 떠올렸는데,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거나, 후회되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생각보다. 나를 오래도록 멋지게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꾸 세련된 문장을 고르게 됐다. 죽는 와중에도 타인을 의식하다니, 영원한 소멸을 앞두고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니. 심히 씁쓸했다.     


적어도 혼자 쓰는 글에서는 솔직해보자는 다짐이 이토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최대한 멋진 사람이 되자는 각오보다, 최소한 멋없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각오를 먼저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힘주어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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