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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13. 2019

폭력은 나쁜 거라면서 ‘빠따’를 드셨다

이중성의 어려움

살아가면서 자주 혼란을 느낀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너무나 모호하고, 사람은 대체로 이중적이며,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남고를 다닐 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어떤 반에서 제대로 된 ‘맞짱’이 벌어졌다. 지금처럼 ‘학교폭력위원회’같은 제도가 활발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말싸움은 말로 끝나지 않고 곧 주먹을 동반했다. 사소한 자존심 싸움도 무엇을 던지는 행위나 폭언으로 이어지며 삽시간에 주먹다짐이 됐다. 점심시간이면 책상을 앞으로 쭉 밀어놓고 뒤에 공간을 만들어서 레슬링 비슷한 몸싸움을 했는데,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하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잦았다. 아무튼 싸움 구경이 흔했다.     


싸움이 잦은 만큼 남고생들은 말리는 일에도 능숙해졌다. 한쪽의 패색이 짙어질 만하면 귀신같이 달려들어 적정한 수준에서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하면 싸움 구경도 할 수 있었고, 방관했다는 죄로 단체로 혼나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UFC 같은 전문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가끔은 한쪽이 피떡이 될 때까지도 말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양호실에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선생님도 알게 되었고, 거친 남고의 선생님들은 각기 애지중지하는 시그니쳐 매를 들고 교실로 달려오시거나, 교무실로 학생들을 호출했다.     


어느 날 또 싸움이 났다. 서로의 팔뚝에 주먹을 한 번씩 내려치는 ‘원터치’를 하다가 열 받은 한 친구가 주먹을 팔뚝이 아닌 턱으로 날렸다. 주변의 친구들은 흥분했다. “우워- 8반 싸움 났다!” 누군가 소리쳤고, 그날따라 말릴 새도 없이 싸움이 커졌다. 선생님은 교실로 달려오셨다. 누가 싸웠는지 어쩌다 싸우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상황 파악을 하시더니 거칠게 싸운 내 친구들을 엎드리게 하셨다. 그리고 이른바 ‘빠따’를 드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묘한 장면이다. 인간 논리의 이중성에 대해 가슴으로 느끼며 한동안 알 수 없는 기분에 겨 있 밖에 없는.    


이 새끼들아! (빡) 폭력은! (빡) 나쁜 거야!(빡)     



폭력은 나쁜 거라고 말하면서 학생들을 폭력으로 선도하는 선생님의 매질이라니. 정말 묘했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충돌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생각 없이도 줄줄 나열할  있을 만큼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없이 흔하다.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간 사람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을 볼 때, 저 사람에게 지켜야 하는 법과 지키지 말아야 하는 법의 기준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버릇없는 아이들을 향해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네. 내 동생이면 진작 쳐 맞았다.”라고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너야말로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바르게 자랐으면 누군가를 ’쳐 때린다‘는 발상은 하지 않았을 텐데.’ 생각해보게 된다.


‘개는 인간의 친구예요’ 하며 개 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고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낀다. 내가 개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왜 소는 되고 개만 안된다는 것인가. 왜 개만 인간의 친구라는 것인가. 그 기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다.      




참담하고 답답한 사실은 나에게도 그런 이중성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직관에 기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뚜렷한 기준이 없다. 누군가 구걸을 할 때 적선을 하려다가도 내 행동이 구걸 문화를 조장  있겠다고 생각하 손을 멈추는데, 일회용품을 쓸 때는 나 하나쯤이야 세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그야말로 이중성 덩어리다. 그래서 타인의 맥락 없이 상충하는 사고방식을 볼 때면 인간의 부조리한 신념을 자주 느끼면서 그 안에 포함된 나의 이중성도 같이 바라보게 된다. 칼로 베듯 명쾌한 질문은 왜 이렇게 없을까. 평생토록 이런 일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끔 아득하게 느껴진다.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럽다. 늘 생각이 많다. 세상엔 돈도 되지 않으면서 내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들이 너무나 많다. 그 걱정이 또 하나의 글로 된다는 것만 유일한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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