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라스트 미션>
아흔에 가까운 노인 ‘얼’(클린트 이스트우드)은 평생 가정을 도외시하고 겉돌면서 살아왔다. 설상가상 애지중지하던 백합 사업도 인터넷의 등장으로 폭삭 망해버렸다. 그에게는 빛바랜 명성만 추억처럼 남아있다. 시상식이나 파티 등 외부 행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딸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탓에 이혼한 아내나 딸과는 말도 섞지 못한다. 빈털터리가 되어서 유일하게 편 들어주는 손녀의 결혼식에도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런 와중 ‘얼’은 우연히 마약 운반책 일을 맡게 된다. 트럭에 마약을 싣고 호텔 앞에 세워놓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업무로 많은 보수를 받게 된 그는 손녀의 결혼식에 든든한 지원을 해준다. 이후로도 마약을 운반하며 받은 돈으로 쓰러져가는 참전용사 회관을 보수하기도 하고 압류된 집과 농장을 되찾기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실상 마지막 영화다. ‘그랜 토리노’에서 노인의 품격을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노인의 삶과, 최후까지 지켜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역설한다. 돈 없는 늙은이가 돈을 얻고 나서 하는 모든 행위를 보고 있으면 노인이 가지는 내적 욕망을 돌려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1. 쓸모 있는 노인이 되기.
2.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잘못들을 만회하기.
3.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얼’은 자신을 위한 소비에 앞서 남을 돕는다. 손녀의 결혼식을 지원하고, 한국전쟁 참전용사 회관을 리모델링하는데 거금을 쾌척한다. 힘도 권력도 없는 ‘얼’은 타인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 살아야 할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노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읊조리는 것 같다.
‘얼’은 훌륭한 노인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내내 등장하는 마약 운반 일만 봐도 그렇지만 그가 지나온 삶도 훌륭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 우리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존경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에 힘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소중한 가족들을 챙기지 못하고 밖으로만 나돌았던 과거의 잘못을 누구보다 뼈아프게 반성한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목숨 걸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를 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에서 처음 등장하는 소설을 떠올린다. ‘황혼의 반란’.
늙은이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고 안락사시키는 사회, 주인공 부부는 시설로 잡힐 뻔한 위기에서 버스를 탈취해 산속으로 도망가 진지를 구축한다. 노인들이 속속 합세한다. 정부와 맹렬히 대항하던 노인들은 끝내 패배하고 제압당한다. 주인공인 노인은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젊은 군인에게 죽기 직전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간 늙은이가 될 게다.”
<황야의 무법자>로 대중에게 누구보다 카리스마 있고 강인한 모습을 각인시켰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아흔 살이 되었듯이, 우리는 모두 늙어 노인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시간만은 돈으로 살 수 없더라.’,‘가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그의 노골적인 조언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한다. 훌륭한 삶을 살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비겁한 늙은이가 되지 말자는 그의 태도가 진중하게 와 닿았다. 아주 늦기 전에 최대한의 만회를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책임 있는 어른일 수 있다는 것. 뭉클했다.
왜 그렇게 꽃에 집착했냐고 아내는 물었다. ‘얼’은 대답했다.
‘이 꽃은 단 하루만 만개하고 져버려. 그러니까 공들여 보살펴야 해.’
이 대사는 '우리 인생도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공들여 살라'는 단단한 조언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