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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30. 2019

감정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 감정으로 산다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일찍부터 조금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배우려고 애썼다.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흉내를 냈다. ‘척’을 오래 하다 보면 변화가 됐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척을 오래 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안 떠는 척을 하다 보면 안 떨리기도 해서, 발표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잘해보고 싶은 여자 앞에서 여유 있게 농담을 하며 친해지고, 어깨와 가슴을 편 반듯한 자세로 웃으면서 발표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등. 능숙한 연기를 통해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얻은 적도 많았다.     


감정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꽤 오래전에서부터 나는 화 안 나는 척을 했다. 모두가 화를 낼 것이라고 긴장하는 상황에서도 화를 내기보다는 감정에 초탈한 인격자 인양 침착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 지금 네가 ~해서 기분이 나빠.’ 차분하게 감정을 설명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내 모습을 스스로 느끼면서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지만, 나를 돌보는 데는 소홀했다. 사람들에게는 품위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마저도 감정의 무조건적인 절제를 강요했다. 화가 난 것이 사실인데도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라고 자기 설득만 하려고 했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의 절반은 틀린 것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유튜브에서 어떤 강연을 보던 날이었다. 강연자가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돈이라든가 단란한 가정이라든가 안락한 삶이나 여행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그들을 짐짓 비웃으며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행복’이 감정이라는 사실도 퍼뜩 떠올랐다. 아, ‘행복’도 감정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감정을 위해 사는 거구나. 내가 그토록 무시했던 ‘감정’이라는 게 삶의 목표인 거구나. 그 행복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면서, 감정을 속임수나 일시적인 기분 따위로 치부했구나.     


영화 ‘풀잎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이 만나는구나. 서로 감정이 부닥치고 감정으로 힘을 내고 아무 상관도 없던 삶이 엮어지고 서로 같이 서서 있게 되는구나.  (…)  결국 사람은 감정이구 감정은 너무 쉽구 너무 힘 있구 너무 귀하구 너무 싸구려구… 너무, 그립다. 그렇다, 지금은.’  


  사람은 감정이고 그건 너무 쉽고, 또 싸구려 같지만, 한편으로는 압도적으로 힘있고, 또 귀한 것이라는 그의 말이 깊이 와 닿았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자꾸 이겨내려고 하면 안 된다.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화난 상태를 충분히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니까, 흐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화날 땐 화나 하고, 기쁠 땐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고, 외로울 땐 외로워하다 보면 감정은 지나간다. 그렇게 순리대로 흐른 감정은 덧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솔직하게 감정을 음미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지나치게 감정에 휩싸이고 압도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역사상 그치지 않은 비가 한 번도 없었듯이 그치지 않을 감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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