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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05. 2019

브런치에서 유독 건실한 청년

착할 때 글쓰니까 착한 것은 맞지만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악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보통 늦은 저녁, 적막이 내려앉은 방에서 쓴다. 그 시간에는 격렬한 감정들은 옅어지고 손익을 따질 만한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의 피로감도 없다. 자연스레 나의 의식은 외부에서 내부를 향하게 된다. 자기 반성의 시간이다.


글쓰기는 보통 후회나 다짐의 방향으로 흐른다.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해서 가식이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지만 솔직한 시간에 대부분 내가 착한 상태로 있으므로, 글도 보통 착해진다. 사람들은 나의 착한 글과 그 속의 착한 마음을 본다. 쓰는 나와, 읽는 타인의 관계는 선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그들과 나는 이해가 얽히지 않은 건전한 관계이고, 그런 이유들로 사람들은 나를 내 생각보다 더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 된다.


나는 내가 쓴 글만큼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자주 오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비치는 내 모습은 참 어색하다. 가증스러운 사람이 된 듯 하여, 민망해진다. 그래서 때로는 글 쓰는 일보다 댓글 쓰는 일이 더 어렵다.


전 착한 사람이 아닌데요. 하면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나쁜 사람은 그런 생각도 못하죠.' '누구나 그 정도 나쁜 생각은 하죠'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신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내가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도 별로 없다. 나는 선과 악의 기준에서 더도 덜도없이 평균의 사람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때면 문장마다 욕을 섞어 대화하고 지저분한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기분 나쁠 때는 종종 아픈 말로 불쾌함을 전하며, 논쟁도 적지 않게 즐기고, 군대 있을 때는 내가 혼났던 만큼 후임들을 정직하게 갈궜던 그냥 시시한 도덕성의 소유자다.


때때로 내가 내 속의 허영심과 음란함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건 그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나를 아는 사람이 내 착한 글을 보고서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도록, 성당을 다니지 않는 나는 글쓰기 나의 고해성사처럼 사용한다. 근데 고해성사를 하고칭찬받는 날이 왕왕있다. 쑥스럽고 난감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 알고보니 너 참 나쁜 놈이구나!'같은 얘기를 듣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말들은 확실히 상처가 된다.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착하다는 말만은 유독 견디기 어렵다는 말이다.


글을 쓰면서 함에 대한 확신도, 악함에 대한 확신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나는 얼마만큼 착하고 얼마만큼 나쁜 사람일까. 그게 참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나쁜 사람들에 비하면 하염없이 착하고, 착한 사람들비해서는 턱없이 나쁜 사람으로 살아왔다. 참 이기적인데 나름대로 염치는 있는 딱 그 정도의 사람.


그리 착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면서 착하려는 열망은 가득하다. 착하려는 욕심만 가득한 상태로 착하지 않은 나는 착하다는 오해를 받느라 글쓰기가 가끔 어렵다. 답글 달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제까지 썼던 글에 꽤 많은 분들이 소중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차마 답글을 달지 못한 것이 많다. 부정적인 댓글에는 내 공격적인 본심이 드러날까봐 망설이고, 긍정적인 댓글에는 쑥스럽고 민망해서 망설였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다. 나는 한 점 부끄럼까지는 바라지도 않. 그냥 1인분의 선함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 진심으로. 누군가 나를 선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할 때, 지금보다는 한참 덜 부끄럽고 싶다. 아직은 한참 멀었다.


그때까지는 글과 나를 일치시키기 위해 그저 솔직할 뿐이다. 그저께 오랜만에 게임하는데 이름모를 우리 팀원 한 명이 자꾸 내 탓하길래, 역겹다고. 너나 잘하라고. 채팅치면서 싸웠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본 바도 없고. 사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자꾸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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