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기 전엔 조금 떨렸다. 얼굴 본 지는 벌써 15년이 지났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올려보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기억난 것은 복숭아를 좋아했다는 것.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주현은 알레르기라고는 없어서 급식시간에 부식으로 나온 복숭아를 내 몫까지 야무지게 해치웠다. “경수 알레르기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얼굴을 잔뜩 구기며 익살스럽게 웃던 주현의 웃음은 같은 나이의 중학생이던 내가 보기에도 한참이나 철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 미소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15년 전 복숭아물을 질질 흘리며 장난스럽게 웃던 그의 웃음이 병상에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과 자연스럽게 겹쳤다.
“야, 반갑다 경수, 얼마 만이냐.”
15년의 시간만큼 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익숙한 목소리. 낯빛은 슬쩍 보기에도 좋지 않아 보였다. 오랜 투병 때문인지 몸에서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대있는 자세마저도 벅차 보였다. 애써 밝은 얼굴로 맞아주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러게, 시간 가는 거 무섭다야. 오랜만이다.”
습관처럼 잘 지냈냐고 물어보려던 발음이 목에서 턱, 걸렸다. 잘 지냈다면 여기서 만나진 않았겠지. 나는 주현을 자세히 훑어보고 싶었지만 내 시선을 느낄 것 같았다. 서둘러 눈을 돌렸다. 옆에 앉은 아내가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도 꾸벅, 인사를 했다.
“갑작스럽게 전학 가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못 했었지.”
아내에게 복숭아 상자를 건네자마자 주현이 말했다.
“그러게. 그때 우리 아버지가 빚을 좀 많이 져서 쫓기고 있었어. 그 뒤로도 전학을 몇 번이나 다녔는지 몰라.”
“그랬구나. 고생이 많았다.”
주현의 위로는 진심이었다. 늘 그랬다. 왜소했던 나에게 덩치 크고 싸움 잘했던 주현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별 이유도 없이 잘해주곤 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나에게 왜 그렇게 잘해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
주현이 별안간 말을 했고 그를 향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봤던 날? 기억이 안 날 뻔했다. 빠르게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그가 말을 이었다.
“정선이 형한테 그탈링 받기로 했던 하루 전날이었는데. 그때 그거 받으려고 우리 체육관에 불냈었잖아.”
기억났다. 정선이 형은 동네를 주름잡던 양아치였는데, 주현을 아꼈다. 정선이 형과 친하게 지낸다는 건 곧 학교에서 실세로 불린다는 거였다. 주현은 곧잘 정선이 형의 심부름을 하고, 종종 담배나 술을 얻어왔다.
체육관에 불을 내라고 한 건 단순한 충성심 테스트였던 것 같다. 주현은 깡이 워낙 셌기 때문에, 당연히 할 줄 알았다. 나는 별로 가담하고 싶지 않았으나 겁쟁이처럼 내빼기는 싫었다. 주현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불 내러 가자!’고 말했고 나도 쿨하게 ‘그래!’하고 대답했다.
편의점에서 지포 라이터 기름을 사서 체육관의 창문을 따고 들어갔다.
“그탈링을 준대. 그탈링을.”
주현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기대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나는 그탈링이 뭔지 몰랐다. 그게 도대체 뭐길래 이리 좋아하는 건지. 그게 이렇게 위험한 일을 감수할 만큼 소중한 것인지도. 그냥 주현의 잔뜩 기대한 표정이 귀여웠다. 어쨌건 받으면 좋은건가보다 하고 눈치껏 분위기를 맞췄다.
아무튼 체육관에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구석에는 푹신하고 넓은 매트가 있었다. 고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람을 위해 소방관들이 설치하는 에어매트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솜이나 스펀지같은 재질로 되어있었다. 가끔 주현과 나는 수업시간에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거기에서 한참이나 누워있었다. 뒤늦게 들어가면 뭘 하다 왔는지 한참이나 추궁받다가 입을 열지 않는다고 엉덩이를 두드려 맞았다.
우린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매트에 기름을 잔뜩 뿌리고는 불을 붙였다. 생각보다 훨씬 잘 탔다. 불이 금방 번지려고 해서 허둥지둥 빠져나왔다. 체육관 전체가 홀랑 탔다. 소방차가 네 대나 왔고, 그 일은 뉴스에도 나왔다. 나는 주현의 집에서 과일을 먹으면서 뉴스를 봤다.
“너희 학교 아니니?” 주현의 어머님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고, 우리는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CCTV가 없었으므로 잡힐 일은 없었지만 적잖이 찝찝했다.
“내일 그탈링 받으러 같이 가자.”고 주현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누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남자 두 명이 양쪽에서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서 잡아챘다. 나는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길가에 주차된 차로 던져졌다. 봉고차 문이 거칠게 닫혔다. 납치인가? 고개를 돌렸더니 형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한쪽 어깨를 잡고 끌었던 사람은 형이었고 반대쪽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나를 뒷좌석에 쳐넣고는 운전석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운전석의 문을 열고 아버지가 탔다.
“일이 안 좋게 됐으니 일단 몸부터 피하자.”
우리는 그길로 부산의 한 단칸방에 갔다. 고모집에서 멀지 않은 판자촌이었다. 판잣집은 없었으나, 6.25때 판잣집이 모여있던 골목은 그대로였으므로 아무튼 판자촌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탈링을 받지도 못한 채,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주현과 헤어져야 했다.
“하루 아침에 네가 없어진 거야.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
주현은 ‘그렇게 된 거였구나.’하는 짠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실은 내가 그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맞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잠깐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어떻게 연락이 돼서, 영준이 장례식에 갔는데.”
“영준이? 교통사고였지?”
주현이 물었고 나는 몇 번 끄덕였다.
“응. 애가 어리던데. 안됐더라. 아무튼 거기서 네 소식 들었어. 지훈이한테.”
“그랬구나. 나 아프기 전에 봤으면 더 좋았을 걸.”
“이렇게라도 본 게 어디야.”
“그래 그래. 죽기 전에 본 게 어디야.”
나름대로 농담인 모양이었는데 그냥 가슴 언저리가 뜨끔하기만 했다.
“죽긴 왜 죽어 임마. 털고 일어나야지.”
“가망 없대. 내 몸이니까 내가 잘 알아. 안 그래도 너 한번은 보고 싶었는데. 보니까 정말 좋다야.”
병치레라고는 없던 녀석이 죽을병이라니. 말로 전해 들었을 때는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막상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까. 신기하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나는 그 마음을 이상해하면서 대답했다.
“응. 좋네. 우리 되게 친했잖아.”
“너 그렇게 사라지고나서, 나 혼자 뻘쭘하게 그탈링 받으러 갔었어.”
그탈링이 뭔데?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타이밍이 애매했다.
“그랬어?”
그냥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선이 형이 너 어디 갔냐고 묻는 거야. 왜 혼자 왔냐고.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하니까, 막 의심하면서 안 주려고 하데.”
그래서 그탈링이 뭔데? 물어보고 싶었는데, 주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 주현의 그 웃음. 주현은 15년 전의 내 복숭아를 만족스럽게 받아먹던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랬어?”
나는 그냥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그거 우리가 얼마나 받고 싶었는지 너도 기억하잖아. 오죽하면 체육관에 불을 냈을까. 크크크.”
주현의 웃는 얼굴은 정말 그대로였다. 죽음이란 단어를 그대로 압축한 듯한 병상과, 그의 떡진 머리와, 초라한 병원복과, 구겨진 이불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감정의 표정. 그 생기 넘치는 장난스러운 표정 앞에서 ‘그래서 그탈링이 뭔데?’ 라는 질문은 목에서 막혀 발음할 수 없었다.
“같이 갔으면 좋았을 걸.”
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15년 전 봄의 체육대회,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3반과의 축구경기에서 주현이 결승골을 넣었던 이야기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5연패 후 모니터를 부쉈던 일, 교회 헌금통에 손을 넣어 오천 원이나 만 원씩 헌금을 빼돌렸던 일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다.
주현과 나는 헌금통에서 돈을 빼내던 대목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껄껄껄 웃었는데, 그러다 멀쩡해진 나와는 다르게 그의 웃음은 가래 끓는 거친 기침으로 변해갔다. 그의 아내가 입과 손바닥에 묻는 피를 닦아낼 때쯤엔 이만 병실에서 나가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쾌차하라는 말을 주문처럼 남기고 일어섰다. 주현은 또 보자고 했다. “이거 유언 아니야. 빈말도 아니고. 담엔 소주 한 잔 해.” 허세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조금의 동정이나 연민없이 진심으로 밝게 웃었다. “그래 새끼야. 꼭이야.”
나가는 길, 병실 문은 헐겁게 열렸다. '그래서 그탈링이 뭔데?' 마지막까지 차마 물을 수는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