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우리 엄마

- 한 달에 한 편씩 초 단편소설

by 서댐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뚝은 빨래를 들기에도 버거워 보였다. 에구구. 바구니를 들고 건조대 옆에 내려놓자, 들릴 듯 말듯 한 신음소리가 입에서 삐져나왔다. 희로애락이 없는 무표정. 그녀는 빨래를 탁.탁. 털어 건조대에 하나씩 널기 시작했다. 한 낮의 여유로운 햇살이 베란다로 가득 쏟아지고 있었고, 티셔츠가 손목 스냅에 맞춰 탈탈 털릴 때마다 은빛 물기가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는 그녀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그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행복한 웃음을 짓기를. 아들로서 진심으로 바랐다. 그가 처음으로 취직해 받은 월급을 봉투에 고스란히 넣어 그녀에게 주었을 때. 그는 그녀가 오로지 그녀 자신을 위해 여행이라도 다녀오길 바랐지만, 그 돈은 몇 달 후 그의 새 와이셔츠로, 구두로, 아버지의 선글라스로 모양만 바뀐 채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인생을 살면서 선택이란 걸 별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자신이라는 존재 없이 그냥 해야할 일을 별 티나지 않게 하며 살아온 사람 같았다. 그녀의 가장 잘못된 선택이 있다면 결혼 상대를 잘못 만난 것이 아닐까. 그는 그런 생각을 자주했다. 아버지는 늘 무심한 사람이었고, 아내에게 살가운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딱딱한 경상도 남자였다. 아버지가 웃으며 대하는 사람은 오로지 외아들인 그 뿐 이었다. 그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봤을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생긴 거지. 그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별안간 그녀가 픽 쓰러졌다. 건조대를 몸으로 밀치며 넘어졌기 때문에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녀는 빈혈이 심했다. 저혈압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적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어도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를 부축해 뉘였다. “엄마, 엄마. 빈혈약 어딨어?” 그가 묻자 그녀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안방을 가리켰다. “화장대. 두 번째 서랍인가, 아니, 세 번째...”


화장대 거울 앞에는 초라한 개수의 화장품이 놓여있었다. 위에서부터 세야할지, 아래에서부터 세야할지 알 수 없었다. 위에서부터 세는 게 맞을까.

두 번째, 세 번 째 서랍에도 약은 없었다. 가장 밑에 있는 서랍을 열었을 때에도 약은 보이지 않았다. 약은 없었고, 별 필요 없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서랍 구석에 먼지가 허옇게 앉은 종이 상자 하나가 보였다. 이런 게 있었나. 남자는 약을 찾아야한다는 것도 잠시 잊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부모의 연애시절 사진이 보였다. 처음 보는 사진들이었다. 둘이 한 때 사랑했다는 유일한 증거로 보였다. 알통에 잔뜩 힘을 주고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아버지 옆에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 수줍게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남은 사진을 꺼내기 시작했다. 70년대. 아직 젊은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거의 모든 사진들을 꺼냈을 때. 상자의 맨 밑에는 봉투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편지였다. 사진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사진을 주우려다가 짧게 적힌 편지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다시는, 이런 잘못 하지 않겠습니다. 가정에 충실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녀의 글씨체였다. 그는 편지와 함께 봉투에 들어있던 사진을 주워들었다.

태성 러브호텔. 이라는 글씨가 뚜렷한 건물 현관을 찍은 사진이었다. 짙은 갈색으로 코팅된 유리문에서 팔짱을 낀 남녀가 막 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그의 엄마였고, 남자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사진의 우측 하단에 ‘88.08.14’로 표시된 날짜가 보였다. 그가 두 살이던 해였다.


사진 속 그녀는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밝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환한 미소였다. 거의 매달리듯 기울어진 그녀의 몸은 이름모를 남자의 팔뚝에 찰싹 붙어있었고, 시선은 남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광대뼈에 닿을 듯 올라간 입꼬리와 큰 입이 시원한 웃음을 만들고 있었다. 그 표정속엔 어떠한 고민도, 애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든 사진을 표정 없이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눈을 깜빡이지 않아 뻑뻑해졌다. 곧 정신이 들었다. 그는 사진과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상자를 제자리에 넣어두고 서랍을 닫았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는 다시 빈혈약을 찾기 시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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