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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은 떨어지는 피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고통에 말조차 잃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등대까지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 나는 몇 번을 미끄러지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제방을 살짝 돌아가니 등대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이 있었다. 빨갛고 녹이 슨 계단이었다. 나는 철제 계단을 올라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람을 찾았지만 겨울바다의 등대 주변엔 사람이라곤 없었다. 바람이 한차례 거세게 불자 옷의 틈새로 한기가 서렸다. 난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으므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따갑게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를 할퀴는 것 같았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왠지 모를 열감이 느껴졌다. 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미영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미영아 살짝만 돌아오면 계단이 있어. 어서 올라와!”
미영은 나를 쳐다보고는 힘없이 울었다.
“오빠 나 아파.”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휩쓸려 아주 작게 힘없이 닿았다.
“구급차를 부르자 일일구를 부르자 일일구......”
일일구가 앰뷸런스임을 알았지만 전화번호는 떠오르지 않았다.
“올라갈게. 근데 나 너무 아파.”
미영이 천천히 걸어 계단으로 향했다. 바닥이 여전히 미끄러워 조심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래 바닥 조심하구. 천천히 올라와. 상처를 좀 잡고 있어.”
“피가 안 멎어.”
“너무 세게 누르지는 마. 살짝 대고만 있어.”
나도 모르게 호통치듯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니까 조심을 해야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바닥이 그렇게 미끄러울 줄 몰랐어.”
그녀는 꾸중 듣는 초등학생처럼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바람이 그녀의 눈을 스치고 갈때마다 눈물이 빠르게 말랐다. 미영의 눈가는 눈물자국으로 뻣뻣해졌기 때문에 눈이 약간 작아보였다.
“일일구를 불러야해. 일일구 번호가 뭐였지? 구급차 앰뷸런스 말이야.”
“오빠.”
“미영아 번호가 기억이 안나.”
“오빠”
미영이 다시 나를 불렀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응. 왜?”
“오빠가 옆에 있어서 좋아. 고마워.”
뜬금없는 말이었고 나는 공식처럼 그녀를 한번 안아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피가 묻을까 팔을 아래로 내린 채 내 가슴에 안겼다.
“항상 옆에 있을 거야. 그보다 우리 빨리 앰뷸런스를 부르자.”
나는 미영을 가슴에 파묻고 귀에다 속삭였다.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일일구가 숫자 119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119는 전화번호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픽 터져 나왔다. 그녀의 팔목에는 여전히 멎지 않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정도 울리자마자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고 구급차를 기다리면서 그녀의 팔목만 쳐다보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제야 겨울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그 온도 그대로 느껴졌다. 귀가 깨질 듯이 쓰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채찍으로 맞는 듯 했다. 오지 않았어야 했다.
미영도 몰아치는 바람에 벌벌 떨고 있었다. 미영을 내 가슴 안에 밀어 넣고 꼭 안았다. 안긴 채로 그녀가 말했다.
“오빠 우리 헤어지지마.”
조용한 말씨였다.
“우린 안 헤어질거야.”
나는 백퍼센트의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양 팔로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갈비뼈를 부수기라도 할 듯이 나를 꼭 껴안았고. 나는 상처에서 피가 더 날까봐 걱정이 들었다.
“오빠 만약에 우리가 오래 만나서 너무 익숙해지고 사랑마저 식어버리면 나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할게. 오래오래.”
그녀가 얼굴을 뒤로 쑥 빼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 미영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한쪽에만 있는 쌍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가 천진하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오빠가 꼭 잡아줘야 해.”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나는 미영의 뽀얀 얼굴을 보면서 내가 안고 있는 이 여자가, 주체할 수 없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절대 못 가게. 그때에도 이렇게 안고 있을게.”
나는 입을 다문채로 웃었다.
눈을 떴다.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는 찰나의 시간동안 천일이 거의 두 번 포개진 시간을 순식간에 이동한 것 같았다. 눈 앞으로 미영이 보였다. 미영은 슬픈 눈을 하고 수평선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내 얼굴로 천천히 돌렸다.
“흉터가 왜 생겼는지...”
까먹은 게 아니었구나.
나와 눈이 마주친 미영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어린아이처럼 낯선 표정을 하고 그렇게 서있었다. 내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두 번, 세 번 끄덕이고 그녀의 고개도 그에 맞게 끄덕거렸다. 광대뼈가 살짝 찌그러지며 어색한 웃음이 지어졌다. 데칼코마니와 같은 표정들이 연속되고, 바람은 여전히 찼다.
바다의 짠내가 코로 들어왔다, 달이 꽤 밝다. 틈과 틈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박제되어 버린 바다를 뒤로하고 걸었다. 등대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을 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멀리 가지 못하고 다리가 어쩐지 후들거려 방파제에 앉았다. 그녀도 나를 따라 걷다가 내 옆으로 앉았다. 깊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뱉었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 속에 우리는 있다. 다음 달이면 그녀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서 하루를 지속할 것이다. 각도가 약간 틀어진 총알처럼 우리는 각자의 궤도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총알은 후퇴하지 않는다. 그녀와 나에게 시간이 충분하다면 무한히 멀어질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사는가. 겨울바람이 차게 분다. 할퀴듯이 부는 바람에 귀가 떨어질 듯 아프다. 귀가 떨어질 듯 너무 아파서 눈물 몇 방울이 흘렀다. 눈물은 영원히 응고되지 않는다. 멎지 않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겨울바다에서 나와 미영은 꽤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