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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23. 2019

토이스토리4:엔드 게임

픽사불패, 감탄의 박수를!

(스포일러 O)


모두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또 하나의 역작을 냈다. 단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하지 않고, 대중과 평단을 흔드는 픽사의 마법 같은 솜씨는 감탄을 자아낸다. 불패의 신화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는 픽사에는 이제 그들만을 위한 사자성어가 필요할 것 같다.     

PIXAR불패. 픽사 픽자(字)는 직접 만들었다.

  

완벽하게 마무리 된(것처럼 보이는) 시리즈를 이렇게 멋지게 연장해나간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픽사는 진보하는 기술로 관객을 현혹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욕심 없이 작품마다 최선의 비주얼로만 승부한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정공법으로 내보인다.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영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 많다. 신파에 빠지지 않은 감동, 절묘한 미장셴, 흥미진진한 액션, 물 흐르는 듯한 스토리 텔링은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리며 돌아간다.      

영화: <토이스토리4>(2019)

1.보니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1년에 한 번씩 반이 바뀔 때마다 조마조마 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담임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실까? 반배정이 완료되고 새학기 등교 전날엔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새학기 증후군’인줄도 몰랐다.     

어린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엄청난 불안에 휩싸인다. 우리는 새로운 주인 ‘보니’를 통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다. 새학기 증후군에 떠는 보니, 직접 만든 공예품에 애착을 가지는 보니, 매일 흘리고 잃어버리는 보니… 그리고 그와 겹쳐지는 나의 모습.    


영화: <토이스토리4>(2019)


2. 스토리 텔링   

  

1995년 첫 선을 보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2019년에 개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95년에 여덟 살이었던 아이는 서른두 살이 되었다. 2019년에 8살인 아이는 토이스토리 1,2,3의 내용에 대해 알기 어렵다. 토이스토리4는 그들에게 토이스토리1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이라면 1995년의 여덟 살과 2019년의 여덟 살 중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 영화를 찍겠는가?      


픽사는 두 마리 토끼를 그냥 다 잡아버린다. 1995년의 여덟 살과 2019년의 여덟 살을 함께 안고 달린다. 영화의 도입부, 5분여의 RC카 구하기 시퀀스가 그 해답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관객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노련한 선택이다.     


3편까지의 기존 멤버들은 캠핑카에서 중심을 잡고, 새로운 관객과 기존 관객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새로운 등장인물들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덕분에 토이스토리의 시그니쳐인 ‘탈출’, ‘구출’에는 새로운 활기가 더해졌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의 개성에 맞는 참신한 액션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듀크 카붐(맙소사 키아누 리브스였다니!)의 스턴트는 긴장감을, 보 핍의 지팡이와 스컹크는 속도감을, 더키와 버니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엇박자를 더한다.      


악역도 만만치 않았다. 개비개비는 꺼림칙한 보스를 제대로 소화했고 벤슨은 흡사 진격의 거인이나 사탄의 인형을 연상시킬 정도로 기괴해서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다.(;;)   


우디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3에서 우여곡절 끝에 보니에게 전달된 우디가 4에서는 보니에게서 자유로운 몸이 된다니. 더 이상 집 안의 장난감에 머무르지 않는 그의 선택은, 시리즈가 4에서 그치지 않고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주었다.      


이처럼 토이스토리4는 도입부에서 기존의 관객과 새로운 관객들을 통합하고, 한층 새로워진 액션으로 종횡무진 달렸다가, 억지 없는 감동으로 마무리하기까지의 모든 부분에서 완벽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사람 앞에서는 생기를 잃고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규칙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장난감들이 네비게이션의 목소리를 조작하고, 물리적으로 브레이크나 엑셀을 밟는 등의 행동을 보니의 엄마·아빠가 그저 기이한 사건 정도로 치부한다는 점은 조금 의아하다.(토이스토리는 늘 그 불문율을 깨지 않고, 우회적으로 갈등을 해결했었다.)    

 

3. 어벤져스: 엔드 게임    

 

사견인데, 토이스토리4에서는 엔드 게임이 보이기도 한다.      

토이스토리=엔드 게임

우디는 캡틴 아메리카와 닮았다. 팀을 이끄는 캡틴이었고, 개인의 행복보다는 대의를 따랐으며, 끝내는 역할을 승계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제시는 캡틴 마블처럼 보안관 배지를 넘겨받으며 새로운 캡틴의 역할을 수행한다.  

    

포키는 ‘트래쉬?’라는 대사를 반복하는데 그루트의 ‘아이엠 그루트!’를 떠올리게 한다. 포키도 그루트처럼 쌩뚱맞고 귀여운 감초역할을 수행한다.     


더키와 버니는 앤트맨 처럼 엉뚱하고,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헐크처럼 불같기도 하다.      

토이스토리=엔드 게임

버즈라이트는 아이언맨 처럼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밖에 몰랐던 버즈,아이언맨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젓해지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차원으로 뛰어든다. 버즈는 결정적으로 죽지 않았지만.     


듀크 카붐은 스파이더맨처럼 공중액션을 도맡는다. 철없이 행동하다가 끝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닮았다. 스파이더맨이 엔드게임에서 건틀릿을 들고 마지막 터치다운을 향해 달려갈 때, 그를 돕는 인물은 보핍과 같은 여성 히어로다.


엔드게임과 토이스토리의 성공 방정식에는 우리의 기호가 녹아있지 않나 싶다. 현실과 밀접하게 호환되는 은유와 상징. 기존의 역할을 아름답게 승계하는 감동.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끝내 자신을 극복하는 주인공들. 우리는 이런 점에 늘 매료된다.


*     


엔드게임이 마블의 끝이 아니듯, 토이스토리4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연장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시대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아날로그 장난감이 유효하면 유효한대로 토이스토리의 이야기는 다시금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1995년의 어린이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이 얼마나 뭉클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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