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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02. 2019

1200편의 영화로 대화하기

대화법, 무비 토크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한 두 달 정도는 완전하게 비어있었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게임을 하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군대에서 체득했던 아침 기상의 습관은 며칠 만에 무참히 깨졌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나는 무엇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채우려고 애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하는 영화들도 거의 본 바가 없었다.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쇼생크 탈출>이라든가, <포레스트 검프>라든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 씨>,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들도 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막연한 답답함 같은 것이 있었다.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래요.”나, <올드보이>의 “누구냐 넌.”, <친절한 금자 씨>의 “너나 잘하세요.”, <살인의 추억>의 “향숙이 예뻤다.”와 같은 대사들이 예능프로그램, 내레이션, 광고, 인터넷 댓글을 휩쓸고 지나갈 때도,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왔었나 보구나 하고 막연히 이해할 뿐 와 닿게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이 사회를 교양인으로서 살아가려면 아주 유명한 영화 정도는 봐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계기였다.     


무슨 영화부터 봐야 할지 몰라서 네이버 영화 순위에서 상단에 있는 것들을 낯익는 대로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다.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던 거다. 어느 정도였냐면, 감동에 젖어서 영화가 끝나고 한 시간쯤은 뭘 할 수도 없게 휘청일 정도였다. 나에게 그런 감수성이 있었다니. 놀라웠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검증된, 길이 남은 영화들을 찾아보다 보니까 보는 영화마다 실패가 없었다. 이를테면 햇반에 간장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던 사람이 최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부터 차례대로 먹어보게 된 것과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영화라는 장르에 완전히 매료됐다. 영화 보는 양을 차츰 늘려나가다가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일 년에 100편이 넘게 영화를 몰아보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200편을 넘게 본 것 같다.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까 의외의 장점이 생겼다. 대화의 폭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이다. 아주 똑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대화의 소재가 엄청나게 다채로워졌다. 여자를 만나거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나는 영화 얘기를 자주 하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영화의 줄거리를 읊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00개의 영화는 나에게 새로운 종류의 대화법을 선물했다.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가 있어. 주인공이 조엘이라는 남자인데, 어느 날 집에 이런 편지가 오는 거야. ‘클레멘타인 씨는 당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습니다. 그녀 앞에 절대 나타나지 마세요.’ 충격이지. 헤어진 여자 친구가 자신과 이별한 후에 기억을 지워주는 병원에 가서 기억을 몽땅 지워버렸다는 거야. 어떻게 지웠냐고? 대충 넘어가. 영화잖아. 아무튼 조엘은 충격을 받고 자기도 명함에 적힌 병원으로 찾아가. 그리고 자기도 전 여자 친구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다음날 출근을 하려는데, 문득 출근이 하기 싫어지는 거야. 충동적으로 기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는 거지. 근데 웬일. 거기서 엄청 우연히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는 거야. 여자가 매력이 넘쳐. 근데 서로 그냥 한눈에 이끌리게 되는 거야 운명처럼. 그래서 결국에는 둘이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돼. 근데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알아?. 전 여친 클레멘타인이었어.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상대방이 내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면서 듣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 나는 무척이나 신기한 기분을 잔뜩 느끼게 된다. 그냥 있는 영화의 이야기를 줄줄 읊을 뿐인데, 나는 신나게 떠들고 있고, 상대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말을 이어간다.     


오랜 연애를 하면서 그 아픔과 괴로움에 기억마저 지워버릴 정도로 서로에게 질려버린 두 남녀가,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아?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야. 우리는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조차 웃는 모습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할 수가 있었는데, 왜 나중에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도 모두 헤어질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영화의 후반부에 조엘하고 클레멘타인은 결국 알게 되거든, 그들이 과거에 만났다가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래도 그들은 다시 만나기로 해. 다시 서로에게 질릴 거라는 걱정도 뒤로하고. 아무래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거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건 사실 새드엔딩이라고 봐도 되는 거야. 그들이 거부할 수 없이 다시 사랑에 빠진 것처럼, 거부할 수 없이 결국 헤어지게 될 테니까. 나는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껴. 영화 정말 좋아.     


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누군가는 감동의 눈길을 보내고, 누군가는 끄덕거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누군가는 또 다른 영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대화는 멈출 수도 없이 시간을 타고 흐른다. 그냥 영화의 줄거리를 읊는 것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대화 속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신기해한다.      


줄거리 대화법은 자주 긍정적이지만 가끔은 날카로운 짜증을 만나게도 된다. 아니 근데 그거 다 말하면 어떻게 해? 내가 볼 수도 있는데. 결말까지 알아버렸잖아.      


나는 무안하게 웃으면서  어... 미안 ㅎㅎ;; 하고 웃는다.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사과한다.

(스포라니, 2004년 영화인데... 하는 마음도 있다.)     


결론은 그렇다. 영화만 있다면 우리는 특별하고 재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줄거리 대화법은 그냥 뛰어난 입담꾼들의 솜씨를 빌려서 내 것처럼 사용하는 유용한 기술이다. 머리를 싸매고 스토리를 구상했을 시나리오 작가들의 생각을 공짜로 빌려다 쓸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즐거운데, 이야깃거리도 된다니. 여행 가는 것에 비해도 가성비가 아주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보는 건 남는 장사다. 내 잔잔한 대화의 비법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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