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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11. 2019

내 이상형은 아스피린

취사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에 관하여

사람들은 모두 아스피린 같고 나는 그들을 사랑하면서 가끔 힘들다.



만성 관절염을 앓고 있던 펠릭스 호프만의 아버지는 극심한 통증 탓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이엘사에서 일하던 호프만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았던 터라 진통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기존의 위험성 있는 살리실산 성분을 바탕으로 아스피린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를 아버지에게 건네자 비로소 아버지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아스피린 개발의 숨은 이야기다.


아스피린은 진통효과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많은 약이다. 열을 낮춰 감기 시 해열제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염증을 없애주기 때문에 관절염이나 척추염 등 각종 염증에도 쓴다. 몇 종류의 암을 예방한다는 연구도 있다.


근래 아스피린의 주요 쓰임은 혈전 방지다. 혈소판 응집, 그러니까 피가 뭉치는 것을 방지하는 특유의 효과 덕분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질병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생긴다. 피가 뭉치거나 굳지 않게 해주는 아스피린의 '효능'이 출혈에 약한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부작용'이 된다. 상처가 나도 피가 쉽게 멎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부작용은 개선이 안된다. 그저 약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피가 굳지 않아서 혈관이 막히지 않는 좋은 점이 때로는 피가 굳지 않아서 출혈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 오리털옷이 오리털 때문에 따뜻하고 오리털 때문에 더운 것처럼. 그냥 그 자체로 때에 따라 좋고 나쁜 성질이다.


부작용은 영어로 Side effect라고 한다. 한자로도 부작용(副作用). 두 번째 효과 혹은 부수적인 효과라는 뜻이다. 전혀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작용을 기대하며 약을 먹지 않으니까 그 말을 보통 나쁜 뜻처럼 느끼게 된다.


든 사람은 아스피린 같다. 그의 좋은 점이 때로는 나쁜 점이 된다. 아스피린의 효능과 부작용처럼 어느 한쪽만 개선할 수 없는 문제다.

섬세한 사람은 때에 따라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과묵한 사람은 가끔 심심하게 느껴진다.

사회성이 좋고 성격이 활달하며 외향적인 사람과 연애하면 그 장점 그대로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그 나하고만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외출을 자주 하며 돌아다닐 것이다. 예쁘거나 잘생긴 선후배가 주변에 꽤 있을 테고, 술자리 모임도 잦을 것이고 일 년에 몇 번 없는 휴가를 내가 아닌 학창 시절 친구들과 여행 가는 데에도 종종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섬세한 사람에게 예민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성이 과묵한 사람에게 나와 대화할 때만큼은 재미나게 이야기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밝고 외향적인 사람에게 그 밝고 활달한 그 모습으로, 말주변과 사회성이 좋은 모습으로 나하고만 시간을 보내자고 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은 관점과 관계의 거리에 따라 그 자체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입맛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 것.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으면서. 늘 아스피린 같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스피린 같은 사람들을 만나온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아스피린 덕분에 뭉치지 않고 주변을 순환했다. 가끔 연애의 상처와 다툼으로 피가 날 때는 그 때문에 멎지 않기도 했다.


섬세한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가 내 기분과 기호에 맞게 털털하기를 바라고, 둔한 사람을 만날 때는 답답해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좀 외향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관심은 필요한데 집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러지 못하면서. 나도 한 알의 아스피린이면서도 그러했다. 진중하면서 유쾌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호탕하고 털털하면서 섬세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약이 그렇듯 사람도 효능과 부작용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관계하기가 어찌 이리 어렵다는 말인가.



먹으면 자꾸 졸리니까 부작용이었다가 이제는 훌륭한 수면유도제로 쓰이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사례를 읽어 본다.

나와 타인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게 될 때마다 아스피린을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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