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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11. 2019

구독자에 대한 솔직한 생각

감사와 기쁨의 글

며칠 전, 구독자가 2000명을 넘었다. 2000명이 넘었다는 메시지가 알림 탭에 표시됐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의미일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뿌듯하고 그랬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이후로는 상을 받은 적이 드물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받았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대학교 때, 참 오랜만에 상을 몇 개 받았는데, 상금도 있었어서 몹시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상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못 받아서 체념했던 거였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을 했었다.   

  

사실은 구독자가 정기적으로 구독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구독자가 느는 만큼 조회수가 대칭적으로 느는 것도 아니니까. 브런치에서의 구독이란, 일시적인 감정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글이 괜찮으면 ‘라이킷’을 누르고, 작가에게 인간적으로 공감을 느끼면 ‘구독’을 누르는 거다. 라이킷이 ‘이 글 참 좋네.’와 같은 감정의 결과라면, 구독은 ‘어머,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네.’, ‘이 사람 재밌는 생각을 했네.’ 정도의 생각이 이끄는 행동 같다. 그건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다. 누구나에게 글로 얻고 싶은 성취는 ‘구독자의 수’가 아니라 ‘공감의 수’ 일 테니까.     


그러니까 2000개의 구독이란, 나라는 사람에게 전해진 2000번의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감 속에는 ‘당신의 글을 우연으로라도 한 번 더 보는 건 나쁘지 않겠다.’라는 마음이 내포된 것이니까 나에게는 행복과 의미가 크다.     


내 글을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도 있다.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매번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고마운 분들. 세상에 좋은 글들이 그렇게나 많은데도 인생의 일부를 쪼개서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다. 첨단에 첨단을 달리는 이 엄청난 속도의 시대에. 그리고 검증된 고전이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로 쌓여있는 이 시대에 나의 글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유명 작가의 에세이와, 고전문학을 제쳐두고 내 글을 읽으셨다는 걸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이 절로 차오른다.      


구독자가 500명쯤 되면 더 이상 구독자수 같은 것에는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곧 500명을 넘었고. 일전에 생각한 대로 정말 떳떳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누구를 부러워한다거나 열등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구독자가 더 늘었으니 나는 이제 구독자 수처럼 보이는 수치에는 더 바랄게 없어졌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이럴 때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은 이후, 역순으로 열몇 편씩 거꾸로 읽어가는 행적이 알람에 표시될 때. 최근의 글부터 아주 오래 전의 글 까지, 거꾸로 읽어가면서 라이킷을 눌러주실 때. 그때야말로 정말 신이 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 치솟는다. 나의 사소한 생각이 누군가에게 공감이나 위로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삶을 이어나가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 되었다. 일기처럼 혼자 글을 쓰는 기쁨과는 또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나의 글이 최소한 2000명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자부심으로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글을 쓰고, 또 고칠 것이다. 괴테나, 도스토예프스키나, 스티븐 킹을 읽어도 모자랄 시간에 나의 글을 읽어주셨던 모든 독자분들에게 이렇게 소소한 글로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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