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Sep 30. 2019

가난은 마을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감정과 경험에는 모두 디테일이 있다

내가 학창시절 10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는 단지의 맨 끝에 있었다. 단지의 초입에는 가장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대가 높아졌다. 상가가 있는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조금 더 낮은 평수의 아파트가 있었고, 그렇게 완만한 언덕의 끝, 산의 초입에 내가 살던 임대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두 동의 ㄱ자 형 건물에는 열두 평 남짓한 보급형 임대아파트가 복도식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마을버스를 타고 통학했다. 버스는 북아현동과 우리 동네를 순환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본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의 반대편 끝은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모양이지만, 당시에는 허름한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막상 끝까지 가보니 반대편의 종점도 언덕에 있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종점이란 언덕에 위치하고, 낡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 세워지는 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복하게 살다가 아버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한 순간에 사정이 안 좋아진 경우도 있더라만. 우리 집은 한결같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잘나가다 망했다고 말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가난이란 게 그리 도드라지는 특성은 아니었다. 작은 평수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을 뿐이지, 밥을 굶는다거나 싸구려 옷만 입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외적으로는 거의 평범했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돈 때문에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친구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가난의 부끄러움. 그 기억의 조각은 마을버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등학교 5학년, 어스레한 저녁이었다. 나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시간이 얼추 퇴근시간 정도였던 모양이다. 친구 집 근처에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를 탔더니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차서 손잡이를 잡기도 힘들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게 덜컹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류장에 버스가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조금씩,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 절반이 남고, 몇 명이 내리고, 또 몇 명이 내리고, 또 몇 명이 내리며 사람은 자꾸만 줄고 있었다.

     

버스는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도착했다. 거기서도 또 몇 명이 내렸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는 얼굴들. 그렇게 익숙한 동네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남은 정류장은 두 개였다. 종점은 임대아파트. 그 전에는 24평 아파트. 그 외에는 어떤 집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다음 역에 내리면 24평에 사는 사람. 내리지 못하면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 나는 어쩐지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이번 역에서 내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결말이 있다. 종점에서 내린 나와, 종점이 되기 전에 내린 나. 그 둘이 모두 있었다. 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서가 아니라 그 곳에 10년 동안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수백 번도 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때로 종점 전 역에서 내려 짧은 오르막을 올라서 집으로 들어갔다. 죽기보다 종점에서 내리기 싫은 날이 있었다. 수백 개의 대문들, 창문들이 다닥다닥 내려다보는 종점에서 고개를 들기 싫은 날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종점까지 가만히 앉아있었다. 버스 수월하게 회차하기 위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 후에 정차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모두 느끼며 천천히 일어나 내렸다. 버스의 문이 열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가난은 모두 종점에서 내렸다.      


이 기억들이 아프고 비참하게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불편하고, 슬플 때 감수성은 예리해지는 법이었다. 덕분에 나는 생각이 많은 아이가 되었다. 가난이 모두 종점에서 내릴 때, 나는 내 마음에 주목해본 적 있다. 종점에서 내리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웠던 순간은 직전 역에서 내리지 못했을 때였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임대아파트라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니. 그것 참 신기하네.      


세상의 모든 감정에는 미묘한 디테일이 있는 법이구나. 나는 마을버스의 종점과, 종점에 닿기 한 정거장 뒤에서 그런 생각들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