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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27. 2019

야! 니가 내 동생 때렸냐?

형 이야기(3)

우리 형은 타고나게 순한 사람이다. 그런 형이 나를 위해 욕을 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일곱 살, 형이 아홉 살이던 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놓고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우빈이는 형 말 잘 듣고, 우주는 동생을 잘 챙겨줘야지.’ 그러면 나는 왜 내가 형 말을 잘 들어야 하느냐고 칭얼댔고, 형은 왜 자기만 자꾸 챙겨 줘야 하냐고 칭얼댔다. 철없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름 설득력이 있지 않나. 동생이라고 왜 형 말을 잘 들어야 하고, 형이라고 해서 왜 동생을 챙겨야 하나. 하지만 유교문화권 국가의 관습을 투정 따위로는 바꿀 수 없었다.        


아무튼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형의 말을 잘 듣고, 형은 날 잘 챙겨주기로 했다. 형은 약속대로 나를 잘 챙겨주는 편이었지만 나는 형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약간 불공정거래이기는 했는데, 당시의 내가 그러기 싫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동네 친구와 놀다가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싸운 게 아니라 맞았다. 여러 대 맞지는 않았고, 딱 한 대 맞았는데 너무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어릴 때 나는 키도 작고 여려서 맞거나 다치면 잘 우는 편이었다.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고 형만 있었다. 형은 나보고 왜 우냐고 했고, 나는 필재한테 맞았다고 했다. 형은 마른 편이었지만 키도 또래보다 조금 크고 운동도 잘했다. 형은 당장 필재를 잡으러 가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형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갔다. ‘김필재 맛 좀 봐라’ 하면서. 아이들은 여전히 모여 놀고 있었고 형은 필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외쳤다.     


“야! 니가 내 동생 때렸냐?”


그런데 생각 외로 필재도 만만치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대꾸했다.


“그래. 때렸다!”


형은 필재가 금방 쫄아서 사과할 줄 알았던 모양인데 필재가 친구 대하듯 당당하게 대꾸하니 좀 놀란 것 같았다. 두 살이나 많아서 덩치차이도 꽤 났는데도. 그러자 형은 어머니가 절대로 절대로 금기하던 ‘욕’을 필재에게 내뱉고 말았다. 아예 기를 확 죽이려고 했던 것 같다.        

  

“내 동생 왜 때려.......... 이 씨발 놈아!”


요즘 초등학교 2학년은 종종 욕을 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당시의 우리 동네 초등학교 2학년은 욕 같은 걸 거의 안 했다. 욕은 고학년 형들이나, 막무가내로 자란 불량한 학생들이나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도 욕을 했다는 얘기가 들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하셨기 때문에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그런 ‘욕’을. 심지어 지금 들어도 상스럽고 강한 ‘씨발놈’이라는 욕을 형은 해버린 거였다.     


필재는 입을 앙 다물고 분해하다가 서글픔을 이기지 못하고 왕- 울어버렸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형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재에게는 형도 없었다. ‘치사하게 형을 불러오다니.’ 필재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경험을 필재가 적는다면 ‘형 없는 서러움’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필재가 울고, 나는 형 뒤에 숨어서 그 광경을 통쾌하게 지켜보았다. ‘나를 때리긴 왜 때려. 우리 형한테 죽을려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런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귀여운 것은,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형이 보인 표정과 말이었다. 나는 위풍당당했는데 형은 어쩐지 안절부절했다. 표정이 어딘가 찝찝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대문 앞에서 형은 나를 돌려 세워놓고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우빈아. 형이 너 복수해줄려고 그런 거니까 엄마한테 욕한 거 말하면 안 돼 알겠지?”


형은 욕한 것을 들키고 혼날 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나는 일곱 살의 나이에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당연히 안 말하지. 그걸 말하겠냐 멍충아?’라고 생각했다. 멋있게 구해줘 놓고 쩔쩔매는 형을 보고 ‘이 사람 참 답답하네.’ 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장면을 생각하기만 하면 너무너무 웃겨서 진심으로 웃는다. 지금도 웃으면서 적고 있을 정도다. 오늘은 문득 이런 추억이 생각 났다. 술술 적는다. 형 이야기는 늘 한 편의 글이 된다.    


*


그리고 조금 덧붙이는 글.     


그렇게 순하고 착하던 형은 사춘기에 돌입하면서 틈만나면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내가 듣지 않으면 패곤 했다. ‘동생이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단단히 길을 들여야 한다.’는 친구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나는 독립운동가처럼 저항했지만 굴복한 날이 적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형에게 이따금 이유 없이 맞을 때마다 나는 욕한 것을 이르지 말라던 아홉 살의 형이 가끔 그리웠다. ‘하나님 그때의 형으로 돌려주세요.’ 기도를 한 적도 있다. 내 기도가 통했는지 형은 고등학생이 되자 다시 원래의 순한 형으로 돌아왔다.      


형과 가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 기억하는 추억이 참 다르다. 위의 경험도 얘기해보니 잘 기억을 못하더라. 형이 기억하는 우리의 추억은 무엇일까. 종종 궁금하다. 형의 기억 속의 내 모습은 어떤지, 형이 글을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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