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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Oct 23. 2019

별 두 개, 선 하나, 작은 개

별 두 개로 작은 개를 상상한 사람

이상함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익숙해져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휴지통이라든지, 나와 너를 뜻하는 ‘내’,‘네’의 발음이라든지, 우리나라 특유의 나이 계산법이라든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나에게는 특히 별자리 그렇다.


내 또래들은 모두 잘 알텐데, 어릴 때 크게 유행했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이 있었다. 그림체가 세련되었고, 내용도 알차고 재미있었지만 남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근육질로,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탄탄한 몸매의 절세미녀로 묘사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던 책이었다.


만화 속에서 주요 화자인 아버지는 자식들을 훈계할 목적으로 옛날이야기를 해주듯이 그리스로마신화의 내용들을 펼쳐냈다. 각 파트마다 제우스, 헤라클래스, 오르페우스 등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마지막에는 꼭 그들이 죽어 하늘의 별자리로 변했다는 식으로 끝났다. 마지막 장에는 밤하늘 속 주인공들의 별자리를 보여줬다. 별과 별들을 이은 선. 그리고 알아보기 쉽도록 뿌옇게 그림까지 겹쳐놓았다.


그러면 나는 그 별자리와 그림들을 보고 꼭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아니 이게 몽둥이를 든 남자라고? 이게 황소라고? 이게 쌍둥이라고? 어린 눈으로 보기에 별자리와 그림들은 너무도 닮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억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화책을 한권 두 권 열 몇 권씩 보다보니까 이야기에도 익숙해지고 이런 저런 별자리에도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확실히 공감되거나 와닿지 않아도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이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지나고 언제부터는 별자리의 억지스러움에 대해서는 이상함을 느껴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냥 별자리는 그런 것. 이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것이다.


사실은 작은 개 자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겨울철 밤하늘에서 찾을 수 있는 단순한 별자리인데 그 유래가 그리스로마신화에 있다.


옛날 그리스에는 ‘이카리오스’라는 농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디오니소스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직접 만든 포도주를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하였다. 좋은 의도였건만 술을 처음 마셔본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 몽롱해지자 독을 탔다고 오해하여 이카리오스를 죽이고 말았다. 이카리오스가 죽자 충견 ‘마이라’는 딸 ‘아리고네’에게 달려가 마구 짖어댔고, 딸은 아버지에게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하고 개를 따라 나섰다. 작은개와 아리고네는 한참을 헤멘 끝에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상심한 딸은 그 자리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작은개도 따라죽었다고 한다.

꽤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은개자리는 형태적으로도 참 특이한 별자리다. 특이하다기보다는 뻔뻔하다고 해야할까. ‘별자리는 억지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취지에 잘 부합하는 것 같다. 작은개자리는 별 두 개와 그 별들을 연결하는 선 하나로 완성된다. 그 단순하디 단순한 모습 위로 그려놓은 디테일한 작은 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러면 나는 작은 개 자리를 보면서 그런 궁금증에 빠져보는 것이다. 별 두 개에 선 하나를 긋고 작은 개를 떠올린 사람은 누구일까. 당당하게 작은 개를 닮았다고 말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인용한 첫 번째 사람은 누구일까.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기로 한 첫 번째 사람은 또 누구일까. 작은 개 자리를 보면서 도무지 작은 개를 떠올릴 수 없는 나는 그 내막을 궁금해하며 납득할 만한 이런저런 이야기상상해보게 됐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옛날 그리스의 어느 지방에 한 아버지와 딸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밤하늘에 평상에 누워 딸에게 그리스로마신화를 들려주었다. 딸은 이야기를 듣고 슬픔에 잠긴다. 나의 아버지도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아버지는 이야기일 뿐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지만 딸은 듣지 않는다. 난처해진 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결말을 덧붙이기로 한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포도주 만드는 법을 알려준 이유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음에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부녀와 작은개를 별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라고.


딸은 아버지에게 별자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데, 아버지는 되묻는다. '작은 개 자리가 어디있을까?' 어린 딸은 밝게 빛나는 별 두 개를 골라본다. 작은 개를 닮았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별 두 개에서 작은 개를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정말 그렇네. 작은개처럼 보이네.’ 딸은 자신이 만든 별자리에 만족하고 편안한 잠에 든다.


시간이 지나 딸은 엄마가 되고, 인자한 미소로 끄덕이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작은 개 자리는 자식에 자식을 거쳐 오래도록 기억된다.


별 두 개, 선 하나의 작은  자리는 아마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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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개 자리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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