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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20. 2019

왜 짧고 쉽게 쓰라고만 할까

쉬운 예술과 어려운 예술

어머니와 이모는 두 살 차이가 나는데 둘도 없는 단짝이다. 전화를 시작했다 하면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이 되는 때도 흔하. 중·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는데, 밤새 천장을 보면서 떠드는 이모와 어머니를 보고 할아버지는 “늬들은 같이 살면서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냐?”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모의 아들인 사촌동생도 나와 두 살 차이가 난다. 어머니와 이모의 영향인지 나와 동생도 사이가 워낙 좋아서, 집에 놀러오면 침대에 나란히 누워 밤새 떠든다. 동생은 밖에서는 말 수 없기로 유명하다던데 나랑 있으면 늘 수다쟁이가 된다.


지난 여름에 이모와 사촌동생이 서울에 잠시 놀러왔다. 나는 그날도 동생하고 새벽 네 시까지 떠들었다. 그러다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어머니와 이모도 여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방에서는 어머니와 이모가, 이 방에서는 나와 동생이. 세대를 이어 수다를 떠는 모습이 우스워서 혼자 큭 하고 웃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억에 특히 남는 건 예술에 관한 거였다. 동생은 난해한 예술 작품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알아먹지도 못하게 쓴 시와, 알아보지도 못하게 그린 그림과, 알아듣지도 못하게 만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예술가들의 오만이 느껴져 불쾌하다고까지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예술은 누가 보아도 쉽게 이해되지만 감동을 주는 글이고,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그림이며, 누가 들어도 선율에 마음을 빼앗기는 음악이라고 했다. 나는 동생의 그 말에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흔쾌히 동의하지는 못했다.


가장 훌륭한 예술은 쉽고 단순한 예술일까. 쉽고 간결한 글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글일까. 나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여러 글쓰기의 귀재들이 흔히 설명하는 좋은 글쓰기의 대표적인 비법은 간결한 문체. 이른바 단문쓰기다. 유시민 작가도 자신의 책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되도록 주어와 서술어가 한번만 등장하는 단문으로 글을 쓰라고 조언했다.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복문보다 단문의 힘을 강조한 바 있다. “짧게 쓰고, 쉽게 쓰라.” 많은 작가들의 조언은 보통 그렇다.


쉽고 짧게 쓰라는 조언은 좋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는 말이지만, (특히 글쓰기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에게)그렇다고 가장 훌륭한 글을 쓰는 방법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는 종종 오해되기도 한다. 일상과 실용의 차원이 아니라 예술의 차원에서도 쉽고 짧은 글이 훌륭하고 수준 높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요즈음 흔 것 같다.


나는 쉽고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전체적인 경향 속에 글쓰기와 예술을 대하는 폭력적인 시선 또한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해한 시를 꺼리고, 지루한 영화는 돈 주고 보지 않으며,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단순한 현대미술을 폄하하고, 낯선 화성의 음악은 쉽게 꺼버린다. 그리고 그런 예술을 예술가의 허세 혹은 오만으로 재단하고는 한다. 취향에 맞지 않아 멀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나, 예술에 모범답안을 만들거나 이를 섣불리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이 시는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이 아름답다. 시가 아니라고 해도 아름답고 따뜻한 글이지만, 풀꽃이라는 제목과 함께 시라는 형식으로 은유를 담으면 은근한 감동은 배가 된다. 짧은 형식으로 어렵지 않으면서도 예술성을 확보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이렇게 쉽고 짧을 필요는 없다. 쉽고 짧은 글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길고 난해한 문장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쉽고 짧은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있고, 길고 난해한 문장으로만 설명 가능한 감정도 있다. 지루한 전개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 있고, 낯선 화성을 통해서만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재료로 각자의 분야에서 미지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사람을 두고 예술가라 부른다. 예술가는 자신의 영역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창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순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치료를 가장 훌륭한 치료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식을 가장 위대한 공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을 대할 때도 이러한 관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해하고 어려운 예술이 가장 훌륭하다는 뜻은 결단코 아니다. 가장 훌륭한 예술은 쉽고 단순한 예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훌륭한 예술도 있지만, 훌륭한 작품이 모두 대중적인 필요는 없다. 쉽고 짧게 쓰라는 조언 또한 쉽고 짧은 글이 가장 훌륭한 글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지는 않는다. 이를 오해하는 이가 없으면 좋겠다.


왜 쉽고 짧게 쓰라고만 할까. 쉽고 짧은 글이 좋은 글이라고만 할까. 나는 때로는 길고 난해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이 좋다. 해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지만 치밀한 시도 좋다. 지루하지만 의도가 분명히 담긴 영화 속 장면이 좋다. 낯선 화성을 쌓아 이전에 없었던 색다름을 선사하는 음악 또한 좋다.   


이를 두고 누군가 나에게 예술에 대한 선민의식에 빠졌다라거나 잘난 척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참 서글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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