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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21. 2019

작가들은 그저 유창할 뿐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글 잘 쓰는 능력은 외국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는 건, 그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작가들에게 어떤 타고난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들의 시선은 대중보다 더 날카로울까. 그들의 철학은 더 깊을까. 그들의 발상과 표현에 자주 감탄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유창한 것이라고 느낀다.


누군가와 싸울 때 유난히 잘 따지는 사람이 있다. 조리 있게 자신의 불쾌함과 상황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사람들.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소리만 꽥 지른다든가 어버버 어물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감정까지 둔감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느끼는 어떤 다양한 감정들, 깨달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의 동일하다. 화난 감정을 상대에게 잘 따지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보편적인 철학을 유창하게 글로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에 작가들은 그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잎을 꽃으로 만드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고 알베르 까뮈는 말했다. 실로 참신한 발상이자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단풍을 보고 우리는 모두 같은 경험을 했다. 단풍이 절정일 때 모든 잎사귀가 각기 예쁘다는 것을, 선선하고 포근한 온도가 봄과 닮았다는 것을 모두 안다. 까뮈는 그 보편적인 감정을 그저 유창하고 아름답게 설명했을 뿐이다.


우리들이 작가들의 글을 보고 감탄할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참 대단하다. 하고 생각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감탄은 공감과 다르지 않다. 공감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이 닿아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이는 대중과 작가들이 거의 같은 밀도로 살아간다는 증거다.


정돈된 글로 출간되지 않았을 뿐 니체나 칸트에 버금가는 논리와 지혜를 가진 생활 철학인을 나는 여러 일터, 학교, 여행지에서 만나보았다. 그들에게 잘 훈련된 글쓰기 기술이 있었다면 훌륭한 책을 한 권씩은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옳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아름다움을. 혹은 비참을 경험한다. 글로 쓰겠다고 의식하지 않고 연습하지 않으면 그 감정들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반대로 쓰겠다고 마음먹고 나의 감정을 주시하기만 하면 글이 될 수 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자신이 궁금해서 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어보고, 그걸 다시 읽어볼 때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렴풋하게 느낀 감정들이 글자가 되어 눈앞에서 펼쳐질 때 그제서야 나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처음 쓸 때보다 지금 쓸 때가 더 유창한 글이지만 생각에 밀도가 깊어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늘었다면 글이 조금 늘었지 생각이 깊어지지는 않았다.


작가들이 특별한 눈을 가졌다거나 인격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나와, 내가 아는 글 쓰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자주 실망한다. 그들이 그저 유창할 뿐이라는 사실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글 쓰지 않는 이들보다 딱히 모자라지도 뛰어나지도 않다는 사실이 허탈하게 느껴진다. 은근슬쩍 잘난 척은 잘하는 사람들이 글만큼도 살지 못하는 걸 보면 더 그렇다.


글쓰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는 그들이 글쓰기 선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쓰는 사람들을 동경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영어로 자기소개 잘하는 사람을 보고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컨텐츠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냥 작가들은 마음의 번역률이 높은 것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기를 바란다. 모두가 하는 그 비슷비슷한 생각들이 가능한 많은 버전과 의견으로 나타나면 좋겠다. 주변에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자주 있는데, 그들에게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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