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Counting Stars
우리는 별을 세자.
*
야간투시경으로 밤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빛을 증폭시켜 어두운 밤에도 대낮처럼 사물을 판별하게 해주는 원리라는데, 아마 GOP근무를 해본 남자라면 나처럼 야간투시경으로 밤하늘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호시탐탐 우리의 감시망을 뚫고 쳐들어온다는 적의 침투조들은 기약없고, 밤은 길었다. 사수와 부사수가 설령 유재석이라 한들, 그 긴 밤을 대화로 채우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소근무는 대체로 고요했다. 날짐승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맑지만 힘없이 퍼지는 그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초소에서 보내는 그 수많은 밤들은 고요했다.
이등병 때였을까, 첫 번째나 두 번째로 들어간 초소근무에서 나의 사수는 나에게 야간투시경을 건넸다.
‘한 번 볼래?’
영화에서나 보던 것을 목에 걸고 (그것도 아주 일상적이고 무료한 표정을 하고) 때때로 그걸로 주변을 훑어보던 선임이 꽤 멋있어 보였다. 이등병인 내가 그걸 한 번 만져보겠다고 요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궁금해 할 뿐이었다. 딱 그런 참에 사수는 나에게 그 야간투시경을 건넨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록빛 세상은 선명했다. 어두운 풍경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아주 역설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그 평범하고 재미없는 경관이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였다. 내가 입을 벌리고 ‘신기합니다.’를 내뱉자 선임은 내 머리를 가볍게 한 대 툭. 치고는 말했다.
‘그렇게 보는거 아니야 임마. 그걸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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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라라랜드를 보고 왔다.
주위의 평들이 너무나 좋아서, 이거 안 봤다가는 대화에도 못 끼겠구나 싶은 영화들이 있다. 아바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음악을 참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기타치는 것을 즐기고, 노래하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라라랜드는 그런 나에게 감상의무감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적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많은 평론가와 아마추어 기고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맘마미아」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뮤지컬 영화는 뭐랄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아주 현실적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이런 감정은 테마파크의 퍼레이드 쇼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퍼레이드는 생각보다 지루하고 유치한 공연이었다. 오히려 내 손을 잡고 흔드는 어머니가 더 신나보였다. ‘어른들은 내가 이런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스무 살이 넘어가고부터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그 퍼레이드가 참 아름답고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판타지라는 그 비현실적 주제가 아주 현실적이 돼버린 나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라라랜드는 그 비현실적 감동이 극에 달하는 장면들로 채워져있다. 로맨틱 코미디영화를 보는 것 같다가, 음악, 댄스장면이 등장했다가 하는데 어느 하나 어색하지 않고 영상미와 음악으로 풍성한 감동을 준다. 내내 즐거웠다.
라라랜드를 보고 나오면서 비긴어게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영화는 다른 듯 닮았고 닮은 듯 다른 점이 매우 많지만, 그래도 연관성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둘 다 음악이 나온다는 점. 남녀의 이야기가 극을 끌고 간다는 점. 결정적으로 사랑보다 충돌하는 꿈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점이 그렇다.
사랑과 꿈은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사랑과 꿈은 대척점에 있는 대상이 아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얼마든지 콜라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 사랑과 꿈도 동시에 획득할 수 있다. 다만 햄버거와 콜라를 양손에 들고 길을 걷다가 전화가 오는 경우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콜라를 잠시 난간에 올려두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난간이 없다면 바닥에 놓아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비라도 오면 고려할 것은 더욱더 많아지겠지.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걷는 길도 이리 복잡할 진대, 꿈과 사랑을 동시에 드리블하는 남녀라면 얼마든지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사랑과 꿈. 무엇을 잠시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한 쪽을 완전히 포기해야하는 것인가. 그런 갈등은 영화를 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비긴어게인에서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는 꿈에 도취된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꿈마저 부정 당한다. 가수가 되겠다는 그녀의 꿈은 그 상처 앞에서 마구 흔들린다.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남녀는 각자의 꿈을 향해 힘든 걸음을 지속해나간다. 그들은 마치 앞과 뒤에서 부는 불규칙한 바람처럼, 서로에게 응원이 되기도 하고 장애가 되기도 한다. 사랑은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결국 두 영화 모두에서 모든 주인공들은 결국 꿈을 이룬다. 나름의 별이 된다. 두 영화의 결말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그 꿈의 고귀함이 아닐까 싶다.(사랑의 무가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되는 것은 꿈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녕 필요한 것은 사랑보다 꿈일까? 꿈을 잃고 사랑을 얻게 된 사람보다 사랑을 잃더라도 꿈을 이룬 사람이 더 행복해질까? 알 수 없다.
별은, 영원처럼 하늘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꿈을 대변한다. City of Stars에서 별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비록 주머니에 천 원 한 장 없어도, 꿈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을 지닌 수많은 별로 가득 찬 가능성의 도시. 거기서 공전하는 수많은 별들을 노래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Lost Stars에서 별은 꿈 그 자체이자 의미이다.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비록 그 꿈은 젊음의 미숙함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자꾸만 잃어버린 것처럼 느끼게 하여 패배감을 주지만 그래도 그 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는, 그런 아름다운 존재로 떠있는 빛이다.
라라랜드와 비긴어게인을 보면서 다시금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꿈을 너무 비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그런 반성도 든다. 묵묵히 걸어나간다면 못 잡을 것도 없을텐데. 하면서. 나는 가슴속에 가진 하나의 꿈을 가지고 나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는 상상을 해봤다. 별이 되면서. 또 나를 기다리는 저 어두운 하늘의 별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일종의 뭉클함이 가슴을 맴도는 것 같다.
OneRepublic의 Counting Stars 가사도 함께 떠오른다.
Said no more counting dollars
We'll be counting stars
Yeah we'll be counting stars
더 이상 돈을 센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난 별을 셀 거야. 그래. 난 저 별을 셀 거야
*
‘그렇게 보는거 아니야 임마. 그걸로는...’
선임은 내 턱을 잡고 하늘로 쭉 밀어 올렸다. 머리가 젖혀지면서 시야는 자연스럽게 하늘로 향했다. 미세한 빛을 증폭시켜주는 것이 야간투시경의 원리였고,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별들의 빛이 야간투시경속에 가득했다. 하늘에는... 정말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로 가득했다. 별이 너무나 많아서 별이 없는 공백의 하늘이 더 적어보일 정도였다. 나는 선임이 꾸중을 할 때까지 아주 오래오래 넋 놓고 그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별,
그것은 아마도 무수한 꿈이 아니었을까.
집에 오는 길. 라라랜드의 OST를 들으면서 참 오랜만에 초소에서 보았던 그 별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무수한 별들이 있었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언젠가는 그 별을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별의 수만큼 무수한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는 것도 참 좋겠다. 사람의 수보다 별의 숫자가 더 많을 테니까.
별은 항상 하늘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으면 좋겠다. 서울 하늘에서 별 보기란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소망한다. 가끔은 모습을 드러내 주기를,
그리고
돈을 세는 날보다 꿈을 세는 날이 더 많기를. 우리 모두가.
Thank you La La 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