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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Nov 29. 2019

솔직한 글쓰기라는 것은

잘 쓰기보다, 그저 솔직하기

나는 글을 쓸 때 그 무엇보다도 솔직하려고 노력한다. 아름다운 글, 멋진 글, 감동이 있는 글. 모두 좋은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억지로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어떤 패턴이나 구조나 형식 혹은 작법에 의해서 그렇게 쓸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글을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전적으로 나의 취향에 의해 솔직하게 쓰려고 하고, 솔직한 글을 찾아 읽는다. 남의 글을 많이 읽거나 댓글을 성실하게 남기는 편은 아니지만 솔직한 글을 만나면 성의 있게 감상을 남긴다. 당신의 솔직한 마음을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 마음이다.    

 

솔직한 글(혹은 글쓰기)은 무엇인가. 나에게 솔직한 글(혹은 글쓰기)이라는 것은 설명하기 조금 애매하다. 세상에는 ‘솔직해 보이는’ 글이 있고, ‘솔직한’ 글이 있다. 솔직해 보이는 글과 솔직한 글을 구분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데 그건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느껴지는 그대로의 감정이므로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솔직한 글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디테일이 있다. 엇박자의 느낌이라든지, 예측을 배반하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다. 이를테면 동화책을 집어 들어 읽었는데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대체로 행복했으나 종종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면서 끝나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따진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나, 대체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어감이나 와 닿는 결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쓰기적 솔직함’은 줄거리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일 때도 많다. 완성된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슬프다.” “외롭다.” “아프다.” “기쁘다.” 하는 포괄적인 주제에 불과하나, 솔직함은 생각지 못한 호흡에서 바늘처럼 나타나 마음을 찌르곤 한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나도 솔직하게 쓸 용기를 얻는다. 나의 마음. 나의 가슴속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고 노력해본다. 다리를 절단한 미군이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고 귀여운 딸까지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와, 섹스는 어떻게 했지?” 하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린다. 도로에서 타이어가 요란하게 미끄러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는데 의외로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언젠가의 나와 그 감정을 떠올린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자유함을 마음껏 즐기다가, 어둡고 적막한 밤 시간에만 그녀를 떠올리던 그 선별적인 외로움의 감정을 떠올린다. 어설픈 교훈 말고, 내가 정말로 느낀 것을 느껴본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감정을 마치 유적처럼, 최대한 상처 없이 발굴해서 글로 옮기는 것을 나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솔직함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솔직함의 엄청난 힘을 나의 삶 속에서 숱하게 경험했다.     


언젠가 그럭저럭 친하게 지낸 여자애와 단 둘이 술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애는 가슴이 큰 편이었는데 계절은 여름이었고, 그날따라 파인 옷을 입고 온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갔다. 나는 그 애와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계속 그 애의 가슴을 의식했다.      


대화는 즐거웠고, 맥주도 맛있었는데 어쩐지 자꾸 미안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어 솔직하게 말했다.     


“나 사실 아까부터 몰래 가슴을 좀 훔쳐보고 있었는데, 네가 가슴이 큰 데다가 파인 옷을 입고 와서 도무지 외면할 수가 없어. 혼자서 몰래 쳐다보는 게 자괴감이 들어서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그래서 말인데 한 5초 정도만 대놓고 봐도 되겠니? 그리고 나면 최대한 절제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더 적나라하게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뺨을 맞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도 사실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말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처럼 웃더니 조금도 불쾌한 기색 없이 가슴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정말 5초 정도 박물관에서 빗살무늬 토기를 관찰하듯이 집중해서 쳐다봤다. 같이 웃었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즐거웠다.


그때의 말은 어디서 주워들은 어쭙잖은 ‘멘트’나 ‘연애 팁’ 같은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의 진심이었다. 그녀가 불쾌해하지 않았던 것도 그때 나의 그 완벽한 솔직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 대책 없이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을 것이다. 솔직함에는 정말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여러 시간대와 다른 상황 속에서 나는 솔직함으로 어려움을 돌파해간 일이 적지 않다.  

    

나는 그렇게 솔직한 글이 쓰고 싶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억지 솔직함을 노련하게 가미하는 글쓰기를 경계한다. 매 순간 나의 진심을 담고, 때때로 보기 거북할 정도로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 ‘위대한 글은 솔직한 글뿐이다.’ ‘솔직한 글이 그 무엇보다 좋은 글이다’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전적으로 나의 취향이 그러하다.  내 생각에 솔직함은 용기고, 용기와 솔직함으로 채워진 글은 향기 없이도 아름답다. 분명히 전달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나에게 솔직한 글쓰기라는 것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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