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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2. 2019

사랑할 자격이 없다

이 글은 3주에 걸쳐서 열 번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열한 번째 글이다. 나는 다시 이별했다. 이별 후에 한동안 나는 분노했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글을 썼다. 상대를 탓했다. 나의 잘못을 숨기려고 애썼다. 글은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열한 번째로 쓴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지우고 며칠을 보내다가 자정 무렵 열두 번째 글을 쓸 것이다.


나는 올해 두 번의 연애를 했다. 연애를 두 번 '했다'는 건, 두 명의 사람을 만나 두 번 이별했다는 말이다. 나는 두 번 만나고 두 번 헤어졌다. 이별의 사연은 각기 다른 이유로 비롯되었고, 이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국 남는 것은 내가 이기적이라는 사실뿐인 것 같다.


나는 자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사랑했고, 수용했고, 아무튼 나름대로는 몫을 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실망이 남았다. 나는 결정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가 부족하다. 아, 참으로 슬프다.



만약 자신의 고통이나 쾌락이라는 감각에 대하여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개별성에 함몰되기 쉽다. 다시 말해 쾌락과 고통에 대한 지나친 감수성은 사람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만들 수 있다. 


-2003년 3월 국어 모의고사 지문 '동정심의 이해' 中-



나를 두고 하는 말일까. 나의 마음을 열심히 살피는 습관은 타인에게 쉽게 실망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혼자서 너무 많이 이해하고 애쓴다. 나는 자상하고, 이해심이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하며 살아왔다. 일정한 거리에서 나는 그 목표에 적당히 부합하는 사람이나, 정작 연애 상대자로서는 부족했던 것 같다. 흉내의 한계일까. 혼잣말한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니구나. 자괴감에 몸서리친다. 속이 좁은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결말이 안 좋았던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나는 몇 달 전 형의 사랑법에 대해 글을 써서 열렬한 피드백을 받았다. 형은 조건 없이 자발적인 을의 연애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계산하지 않는 사랑,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그런 사랑을 나의 형은 한다. 나는 형과, 형의 여자친구의 착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만 얻었다. 행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나는 너무 나를 살피고, 균형을 생각한다. 형의 사랑을 배우자, 온몸으로 배우자. 그렇게 다짐했는데 실패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렵다.


이별의 초입에서 멀어지는 연애의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항상 맞고, 상대가 틀렸을까.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늘 타인의 이별을 관찰하면서 일관되게 생각했다. 일방적인 잘못의 이별은 없다고. 모든 이별은 쌍방과실이라고. 근데 왜 이별을 결정할 때까지 나의 잘못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을까. 않을까. 한심하다.


이별하고 다시 혼자의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기분이 더럽고 외로워서 입술을 깨문다. 아무한테 전화라도 왔으면 하고 핸드폰을 들어본다. 전화가 올리가 없다. 평소에는 그렇게 귀찮아하는 모두의 연락이 어두운 밤만 되면 아쉬워진다. 그렇다고 막 전화를 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러고 만다. 잠을 잔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문장을 길게 늘여 쓰는 것 같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달리 할 말이 없다. 나에게는 내가 너무 소중한 것일까, 한없이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나는 얼마나 더 성장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될까. "어떻게 하면 상대를 용서할 수 있나요?" 아주머니가 법륜스님에게 묻자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용서할 생각을 하지 말고 사과를 해요. 나 같은 사람 참아주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평생 갚으면서 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상대를 탓할 생각 자체를 버리는 것이 시작이라는 말씀, 나에게 적용하려 애쓴다.


상대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속 그 이기심은 누구의 것일까. 이기심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이기심인 것을. 3주 동안 이기적인 그녀의 단점을 요목조목 적다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부르짖다가, 오늘에서야 결국 내 탓을 한다. 나의 이기심이 그만큼 컸노라고. 다시 오지 않을 봄과 여름과 가을과, 다시 볼 수 없는 그녀에게 손을 흔든다. 사랑할 자격이 내일이나 몇 달이나 몇 년 후에라도 생기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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