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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28. 2019

이별이 아프지 않아서 아팠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나는 이별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이별의 감정을 어떻게든 발산해야 했다. 살면서 산문이라고는 별로 써보지도 않았는데, 거의 내 첫 글쓰기에 가까웠음에도 그야말로 술술 써졌다. 감정이 나의 문장보다 과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받아 적기만 해도 된 것이다.


 외롭고 쓸쓸할 때마다, 그 순간의 감각들이 모두 글감이 되었다. 세상에는 이별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무척이나 많은 모양이었고, 그들은 댓글을 달며 내 이야기에 공감했다. 동병상련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들을 통해 힘을 얻고, 그들도 나의 글로 위안했다. 몇 달에 걸쳐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이별을 아주 건강하고, 안전하고, 재미있게 이겨냈다. 물론 외로운 시간들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좋은 추억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연애를 했다. 모조리 이별을 맞이했으나 별달리 이별에 대한 글을 쓰게 되지는 않았다. 이별의 아픔이 내 생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별의 감정을 글로 풀어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연재'같은 것도 가능했는데, 그 이후로는 키보드 앞에 앉을 때마다 이별을 팔아서 글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관련 없는 글을 쓰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만 잠깐씩 했다.


아프지 않은 이별 아프지 않아서 아팠다. 비교적 빠르게 공허함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토록 멋없어하던 어른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는 아찔함이 엄습했다. 수성 보드마카처럼, 미끄러지듯 선명했다가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관계였나 싶고, 그래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던 것인가 싶고, 너무 능숙했던 만남과 이별아닌가 싶었다. 언제나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꿈꾸던 나는 정작 입으로만 그렇게 떠들면서 완전한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나도 모르게.


나는 내가 현실주의자고, 네가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구나. 안녕.


어떤 이별에서 그녀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저 문장을 수없이 읽었다. 나는 이상주의자이고 싶었는데, 어느새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구나. 나의 연애는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와서 그렇게 아프지 않게 되어버렸구나. 이별보다 현실에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더 아팠다.


이별 후에 마음의 거울을 보면서. 나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치유하고 관리하는 데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글도 쓰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꺼이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픔까지 성숙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 사실은 어릴 때부터 그런 사람이 막연히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언제나 어설픈 단계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데. 내가 완전히 감정을 정복하지도, 대책 없이 휘둘리지도 않는 어떤 애매한 선 위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픈 이별을 겪고 싶은 것은 아니다. 5년, 6년, 10년씩 이어지는 긴 연애를 해본 바도 없고 그런 만남 후의 이별은 상상하기도 싫다. 겪는다면 아마 내 인생이 무너지고, 영혼이 파괴되고, 앞으로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처참한 이별이 될 것 같다.


아픈 이별은 아파서 아프고, 아프지 않은 이별은 또 아지 않아서 아픈 것이겠지. 무엇이 나을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프지 않은 이별이 그래도 덜 아픈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늘 이기적인 편이니까.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택했겠지. 그렇게 생각해도 마음 언저리가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별이 가면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왔다. 어느샌가부터는 조급하지도 않더라. 오히려 그 만남이 다시 이별이 될까 봐 이른 걱정에 잠긴다. 후회 없이 만나고 적당히 아플 수는 없을까. 이런 마음이 이별을 만들었을까.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헐겁게 자책하고.


오늘도 그 마음을 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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