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Dec 26. 2019

양준일, 무결하지 않아도 되는

그에게 선을 그어주지 말자

유승우의 ‘선’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들 사이엔 우리 둘만 모르게 그어진 선 같은 게 있나 봐.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스타에게는 항상 그어진 선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선을 긋는 주체를 편의상 대중이라고 지칭하고 싶은데, 나만 쏙 빠져서 잘났다거나 당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는 별로 원하지 않는데도, “아니 넌 우리가 그은 선까지는 떠야 해.”하고 부추기는가 하면 나중에는 “넌 허락도 없이 선을 넘는 거니?” 하면서 추락시켜버린다. 나는 오래간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양준일에게도 이런 날카로운 선이 적용되지나 않을까 작게 걱정하고 있다.


양준일의 이야기는 마법 같다. 91년도에 데뷔해서 파격적인 비주얼로 가수 인생을 아주 잠깐 불태웠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손석희와의 JTBC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를 끊임없이 비워내고 지워내면서 살았다 했다. 과거의 영광과 꿈이 유분기 없는 로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 그가 느낀 좌절과 허망함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눈물은 말라도 눈가를 뻣뻣하게 만드는데. 그의 웃음에는 마른 눈물자국이 함께 느껴지는 듯했다. 어쩐지 슬며시 처연했다. 감사함과 기쁨 뒤로 보이는 그 헛헛한 감정은 아마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대중들이 그어놓은 그 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애매할 뿐이다. 스타들은, 특히나 반짝 스타들은 그 선을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 선은 스타를 여러 방면에서 포위한다. 도덕성일 수도 있고, 정치 성향일 수도 있고, 과거의 어떤 전력일 수도 있고, 몇몇 단어에 불과한 실언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와 가까운 지인의 잘못일 수도 있다.


선민의식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일부 대중들의 그러한 행태가 정말이지 꼴사납다. 그들은 개인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주무르는 것을 순수하게 즐기는 것 같다. 아티스트에게 무리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학자에게는 무리한 쇼맨십을 요구하고, 사업가에게는 지나친 겸손을 요구하면서 이 세상에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만을 용인하려고 한다.


그러한 선들에서 자유로운 이는 자신의 영역에서 걸출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비현실적인 이타심을 두루 갖춘 유재석 같은 사람뿐일 것이다. 나는 사실상 어떤 이도 이 모든 선에서 대중의 니즈를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편이다. 양준일이 걱정되는 이유다.


양준일은 여러모로 약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는 흘러간 가수이고, 그래서 오히려 애틋하지만 그 애틋함이 도리어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는 음펨바 효과가 그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 현재 그의 명성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대중의 환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렇다.


“전 춤을 좋아했지만 노래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전 목소리로 10을 표현하고 나머지 90을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슈가맨에서 그가 직접 밝혔듯이 양준일은 스타가 된 가수가 아니라 가수가 된 스타에 가깝다. 이를 먹잇감으로 삼지는 않을지 괜히 내가 노심초사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고, 자유로운 춤을 췄고, 지금 봐도 힙한 패션 감각을 가졌으며, 이제는 (소년의 미소를 가진) 미중년이 된 그를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으로 봐주면 제일 좋을 텐데.


그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에게 앞으로 너무 많은 돈을 벌어서도 안 되고(정확히 말하면 번 돈을 자랑해서는 안 되고), 10년 이상 쉬었지만 춤과 노래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해야 하며,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대중에게 끝없이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강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중들이 그에게 그어놓은 선에 딱 맞춰 살라고 정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과거를 끝없이 지워내고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을 강제로 소환해내서는 저런 요구사항들을 암묵적으로 강제한다면 그건 잔인함에 가까울 것이다. 나의 한낱 우려이기를 바란다.


나는 90년대 초반에 태어났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에 듣던 노래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서태지의 노래를 좋아하고, 현진영의 노래를 좋아하고, 김성재의 <말하자면>을 늘상 흥얼거린다.


슈가맨에 양준일이 등장하기 1년 전에 나는 현진영의 전성기 영상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를 보았다. 잘생겼고, 멋졌다. 춤도 그랬고 패션은 충격적일 정도였다. 그가 슈가맨에 등장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뭉클했다. 유튜브 어딘가에서 조금 미리 봤다는 이유로 나의 세대도 아닌 그를 보면서 기뻤것이다. 비슷한 연배이신 분들은 또 얼마나 반가웠을까. 내가 아는 먼 동네 삼촌을 TV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또 내 생각보다 훨씬 겸손하고 사려 깊은 모습이어서 더더욱 멋졌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초심’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좋아한다.


나는 옛날이랑은 다른 사람
어떻게 맨날 맨날 똑같은 생각
똑같은 말투 똑같은 표정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수가 있겠어


그는 이미 옛날과는 다른 사람이고, 지금과는 또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고 우린 다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 나는 그 모든 모습을 긍정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완전무결하지 않아도, 초심을 잃어도 상관없이 그와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를. 그가 행복하고, 그를 보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국에서 상처 받은 그가 영화처럼 이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행복해서,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에게 따뜻함과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해하며 살아가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