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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15. 2020

아빠. 진짜 파리 가실 거예요?

영화: 몽마르트 파파

다 계획이 있지.


정년퇴임 후의 삶을 우리는 ‘노후’라고 압축하여 표현하곤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말의 출현과 함께 그 시간은 막막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노후’에 접어든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던 아버지에게는 꿈이 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에서 실컷 그림을 그려보는 것. 그 꿈은 청년 시절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것이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평생 맴돌았다. 몇십 년을 맴돌며 끝내 비행기를 타게 만든 열망. 아버지는 그래서 가야 했다. 하지만 신화 속에서 영웅들의 모험이 그렇듯, 집을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험난하다. 사소한 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특히 거리화가의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은 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저런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아버지는 몽마르트로 갔다.


이 과정을 기쁘게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나쯤 그런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불현듯 떠오른 어떤 열망들을 끝내 해결하고자 하는 지난한 몸짓일 수도 있겠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2020)

영화는 아주 단순한 편이지만, 단조롭지는 않다. 그건 영화 내내 뻔한 듯 뻔해지지 않는 기대의 배반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관한 영화이지만,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은 단연 어머니의 존재이다. 어머니는 사실상 극 전체를 이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능력을 부정하고, 여행의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진짜 파리에 간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관객은 보란 듯이 아버지가 파리로 떠나기를 바라게 된다. 중요한 시기마다 어떤 ‘오기’를 전달해준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행을 폄하할 때마다 아버지의 편이 되어 작게나마 분노하게 된다. 악역이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의 비판적 시각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재미의 진폭을 더한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2020)

아버지도 만만치 않다. 인품이 훌륭하고 낭만적인 아버지가 파리에 가서 그림만 그렸다면 어딘가 심심하고 교육적인 이야기가 되었을 텐데, 아버지는 또 은근슬쩍 카지노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 도시마다 카지노를 기웃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노라면 “즉당히 하세요 아버님!” 소리가 목젖으로 치민다. 계명대 서양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직에 평생을 몸담은 낭만적인 미술 선생님과 어딘가 철없고 고집 센 노년의 아저씨가 번갈아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림을 볼 때만큼은 진지하시니 울컥울컥 감동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이렇다.

“내가 꼭 그려보고 싶은 ‘감정’이 있어”


아버지는 그림과 함께 항상 감정을 이야기한다. '장면'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당대의 많은 이들은 화가가 곧 사장될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오차 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에 비해, 그림은 비효율적이고, 사진보다 생생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그림과, 화가가 남아있다. 매년 수많은 새내기 미술학도들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모두 고화질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그림은 현실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담는 기술이 아니라, 그림의 형식을 빌린 ‘감정의 형상화’다. 그림은 장면이 아니라 장면을 바라본 작가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화풍과, 아버지가 유난히 감응하는 그림들의 사조가 거의 인상주의라는 것은 그림을 한 사람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버지의 철학을 부연 설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2020)

인상주의 화풍에서 세밀한 묘사는 중요하지 않다. 인상파 화가들은 관습적인 색에서 완전히 탈피해서 순간순간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의 인상을 담았다. 그림 속에서 형체는 뭉개지고, 색감은 생소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순간의 인상과, 그 순간 느낀 화가의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아버지가 인상주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모네의 그림 앞에서 감탄한 것에서 우리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러니까, 인생은 순간의 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현재에 있고, 과거와 미래는 허상과도 같다. 순간순간의 삶에 우리는 존재한다. 우리의 존재는 인상주의 그림과 다르지 않다. 순간순간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의 세계에 우리는 있다. 우리는 감정의 동물이고, 그 감정 또한 시시각각 변한다. 그 순간의 감정들이 모두 예술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지혜는 언뜻 뻔하면서도 거듭 울림을 준다.     


영화 내내 짐벌을 사용하지 않아서 화면이 거슬리게 흔들린다. 러닝타임은 사실 짧아서 더 좋았지만 완성도 면에서 치밀한 픽션에 비할 바는 아니다. 볼거리도 그리 쏠쏠하지 않다. 하지만 그 잔잔한 부모님의 다툼과, 그림 그리는 아버지의 몰입과, 세 식구의 잔잔한 여행에서 나는 머리가 깊이 맑아지는 기분과 함께 휴식하는 듯한 편안함을 맛보았다.


고흐는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만 팔고 죽었다. "고흐는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시던 쿨한 모습과, 사실은 그림이 팔리기를 고대하던 그의 초조한 눈빛 사이에서 마지막이 되기 전 날까지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 아버지의 그림은 드디어 팔렸을까. 아니면 끝내 팔리지 않았을까. 영화관에서 확인하시라.


영화: 몽마르트 파파(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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