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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08. 2020

글쓰기 슬럼프가 찾아왔을때

- 올 수도 있지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스티브 블래스는 19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둔 다음 해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게 됐다. 그에게 어떠한 신체적 문제없었다. 이를 해결할 수 없었던 그는 끝내 은퇴를 결정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심리적인 문제로 자신의 기량을 잃어버리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 이로 인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도 드디어 요놈이 왔다. 뚜렷한 이유 없이 글쓰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3년 넘게 띄엄띄엄 잘 써왔는데 요 근래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가벼운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앓게 된 것은 아닐까. 머리를 조금 싸맸다.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런 시기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에 관심 많은 나는 각종 대화법 및 커뮤니케이션 도서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다. 이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유용한 대화 기술의 하나는 ‘할 말이 없을 때의 대화 주제 찾기’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긴 해야 되는데, 도무지 할 말이 없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럴 때 가장 유용한 대화 주제는 ‘할 말이 없음.’이다. “하하하, 어색해 죽겠는데 할 말이 도무지 없네요.”라고 얘기하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둘에게 이보다 공감되는 주제는 없으니까. 이건 어쭙잖은 날씨 얘기나, 거주지 탐문보다 백배는 낫다.      


대학교 4학년 때 본관으로 학과 행사용품을 수령해야 했을 때, 어쩌다 보니 한마디도 얘기를 나눠본 적 없는 여후배와 같이 가게 됐다. 거리가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아서 무슨 얘기를 하기는 해야 했는데 도무지 할 말도, 질문거리도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때도 나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질문거리 생각 중.”이라고 얘기했다. 본관에서 인문관을 왕복하는 20분 동안 우리는 ‘친하지 않음’, ‘어색함’을 주제로 대화했다. 마법처럼 친해졌고, 어색함도 깨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음’, ‘글쓰기가 어려움’에 대해 쓰면 된다. 술에 취해 엉엉 울면서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짓도 한, 두 번까지가 진솔함이듯, ‘글쓰기 슬럼프’도 여러 번 써먹을 소재는 아니지만 가끔씩이라면 어떤가. 괜찮다.


왜 글쓰기가 어려워진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좋은 에세이를 많이 읽다 보면 글에 대한 욕구가 치솟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주눅이 팍 들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김영하 작가,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를 읽으니까 그렇게 쓸 수 없는 내가 너무 객관적으로 처참해 보여서 도무지 글을 쓸 수 없었다.

두 번째는 꾸준히 써야 한다는 가벼운 강박 때문이다. 나는 3년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글을 업로드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개인적인 숙제처럼 되어버렸다. 대단한 열성팬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연재작가병 같은 게 걸려버렸는지 ‘우빈아 너 안 쓰고 뭐하니?’ 그렇게 다그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세 번째는 내 브런치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제발 읽지 마세요.ㅜ”라고 말했고, 그분 또한 “안 볼게요^^”하였으나 아무래도 의식이 되어 글쓰기가 뚝뚝 멈췄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태연하고 노련하게 안 읽은 척해주셨으면 좋겠다. 보든 말든 나는 어차피 계속 쓸 것이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나는 당황하지 않고, 가벼운 슬럼프를 여유있게 무시하며 글을 완성해간다.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유비무환’의 자세라기보다는 덜 근심하기 위해 생각쯤은 해본다는 자세에 가깝다.


종종 죽기 전에 한 번은 끔찍한 감기로 끙끙 앓을 것을 떠올린다. 사랑이 찾아올 것이고, 그게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도(갈등이 아니라면 죽음으로라도) 생각한다. 한 번쯤은 가까운 사람에게 깊은 실망을 느끼리라는 것도, 화장실을 찾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해질 일이 있으리라는 것도 미리 생각한다.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때도 몇 번이나 찾아오겠지. 이렇게 미리 떠올리면 앞으로도 나는 오늘처럼 적당히 당황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무서웠던 글 막힘. 한동안 찾아오지 말라고 짧게 기도한다. 스티브 블래스도 볼넷을 위해 전력투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주제넘은 생각을 하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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