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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27. 2020

2007년, 정자 관찰 실험

축제에 대한 어느 기억

고등학교 때 ‘과학반’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했다. 우리 고등학교에서는 잘 나가는 동아리가 네 개쯤 있었는데 ‘과학반’은 그중 하나였다.


나머지 대세 동아리는 공부 잘하는 선배들이 많았던 ‘신문부’, 딱 들어도 인기 많을 것 같은 ‘밴드부’, 좀 논다는 친구들이 모이는 ‘문예부’였다. 학교에서 양아치로 분류되는 학생들이 문예부로 몰린다는 것은 참 특이했는데, 잘 나가는 선배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니까 그냥 전통이 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문예부라는 타이틀이 자칫 부족 보일 수 있는 지성과 감수성을 채워주는 것이기도 했다.


완전 메이저였던 과학반은 면접도 봐야 했다. (기수제가 아주 철저했다.) 다행히 나는 과학반의 임원진들이 우리 형의 친구였다는 것으로 약간 낙하산처럼 손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가입이 확정되고 나서는 RPG 게임에서 직업을 선택하듯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파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파트 선택은 축제 때 방명록(여학생 핸드폰 번호와 동의어)을 받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다. 나는 화학 파트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가위바위보에 소질이 없어서 밀리고 밀리다가 생물 파트로 들어가게 됐다. 형들은 “우빈아 상심하지 마... 그래도 지구과학보다는 낫잖아.”하며 나를 위로했다.

     

축제 때 과학반 행사장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 중 하나였다. 우리는 교실 두 개를 통째로 비워놓고 어두운 천으로 미로처럼 동선을 만들고, 과학 실험들을 파트 당 네 개씩 배치해서 일종의 놀이시설물(귀신의 집의 과학 버전)처럼 꾸몄다. 우리는 가이드가 되어 준비하고 있다가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돌아가며 실험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여학생들은 과학반 교실에서 네 가지 파트를 지나면서 네 명의 가이드를 만나고, 그들에게 과학실험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참여도 다. 그렇게 출구를 나가면 선배들이 종이를 건네며 몇 가지 설문을 받고 마지막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가이드 이름을 적게 한다. 그 밑에는 애프터 여부(O/X)도 적혀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가이드로 뽑히면 그 방명록은 그 가이드의 것이 된다. 여학생의 번호와 함께.      


우리의 목표는 누가 더 많은 여학생의 번호를 받을 것인가에 쏠려있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 다음 카페를 이 잡듯이 뒤졌다. 물리 파트에서는 레고로 자이로드롭을 만들고, 화학 파트에서는 불꽃을 터뜨리고, 지구과학은 화산을 만들었는데, 생물 파트는 여러모로 조금 궁색했다. 선배들은 액체질소로 금붕어를 얼렸다가 물에 풀어 다시 소생시키는 실험과, 인공 안구 만들기 등을 제시했는데 아무리 금붕어를 죽였다 살려도 화학 파트의 친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들은 분무기에 알코올을 담아서 램프에 불 붙이는 것도 실험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그건 그냥 불쇼잖아 나쁜 새끼들아.” 항의했었는데 가볍게 묵살됐다.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연발로 촥촥촥하면서 불을 옮기는 건데 실제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도 졸라 멋있었다.)     


여기저기서 순조롭게 축제 준비가 진행되고 있을 때 울상인 쪽은 우리 생물 파트 네 명이었다. 감자전분 조물딱 거리는 거 보고 누가 번호를 주냐... 우리는 입으로 욕을 씨부리면서 화산에서 용암 나오는 것만 망연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설의 빨간 명찰 고3 선배들이 과학반 실험실로 축제 준비를 점검할 겸 행차했는데 선배 중 하나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받게 되었다.     


“화학 파트 이기는 법 알려줄까?”


선배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모으고는 비밀처럼 한 가지 실험을 제의했다. 우리는 어떤 실험인지 물었고,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정자 관찰 실험.”


그러니까 한 명이 정액을 담아오면 그걸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하라는 거였다. 엄청 자극적이라서 여자애들 머릿속엔 온통 올챙이밖에 안남을 게 분명하니 거기서 멘트만 어떻게 잘하면 방명록을 싹 긁어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솔깃했으나,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서 모두가 망설였다. “그러니까 그거를 담아오려면 혼자서 그걸 해서 병에다 그걸 담아서 와야 되는 거죠?” 내가 물었고 선배는 대답했다. “당연하지. 근데 그거 금방 죽으니까, 아침에 뽑아오던지 전날 저녁에 해야 된다.”6년 전인가 선배들이 한 번 해봤다고 했다.


절대 안 하고 싶었는데, 방명록 한 장도 못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긴급회의에 돌입한 우리는 결국 우리의 다섯 번째 실험으로 정자 관찰 실험을 선택했고, 한 명이 당일 아침 그 짓을 해서 그걸 담아서 가져오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우와. 소질 없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승부사 기질은 있었는지 나도 이겼다. 걸린 친구는 사실 지금 이름이 기억 안 난다. 떠오르는 건 그저 그의 격렬한 절규. 그 친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절망했다. “수백 명이 너의 정자를 보게 될 거야.” 선배들은 소식을 듣고 깔깔 웃었다.    

  

축제 당일. 친구는 쭈뼛거리며 작은 병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그게’ 담겨있었다. 아주 난리가 났다. 선배들도 진짜 그걸 담아올 줄은 몰랐는지 친구에 친구에 친구까지 불러서 자랑을 했다. 신문부 선배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구경했다. 친구는 자신의 그것을 슬라이드 글라스에 조금 덜어서 커버를 덮고 현미경 위에 올렸다. 선배들이 한바탕 구경을 하고 나서 (꼬리가 두 개인 정자가 있었다. 그거 때문에 또 난리가 났다.) 나도 구경했다. 정자를 실제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린 나이여서 그랬는지 원래 그런지 활동량이 어마어마했다. (그 친구 지금쯤 결혼했을까?)     


아무튼 그다음부터는 순조로웠다. 담당 교실의 형광등을 블루라이트로 교체하고, 과학실험들의 배치를 마치는 것으로 준비가 끝났다. 우리는 필살기처럼 정자가 담긴 현미경을 우리 파트 마지막에 배치했다.      


축제가 끝나고 나는 86장의 방명록을 받아서 1학년 20명 중 4등을 했다. 축제가 끝난 이후 몇 주 동안 하루에 몇 백통의 문자를 여러 학교의 여학생들과 나누었다. 그때는 워낙 숙맥이어서 실제로 만나고 그러지는 못했다. 그냥 문자하고, 통화하고, 싸이월드로 일촌 맺고 그랬다. 내 인생에 여자와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지금까지 없다.


정자의 덕을 본 것이냐면... 사실 그렇지 못했다. 그냥 금붕어를 액체질소에 넣었다가 물에 넣었다가 하며 열심히 죽였다가 살렸던 게 유효했다. 실전에서 초인적인 능력이 솟아났는지 여자들 앞에서 말도 좀 잘했던 것 같다.    

 

정자관찰실험은 축제 시작 직전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설치가 끝나고 담당 선생님께 최종 검사를 받는데 선생님이 현미경을 보고 경악하셨기 때문이다. “미친놈들아 이게 뭐야!” “정자... 관찰 실험인데요.” “이걸 어떻게 가져왔어?!” “00이가 아침에 가져왔습니다.” “으아아아! 당-장-치워어!”

친구는 수치스러운 표정과 함께 자신의 일부를 물에 흘려보냈다.     

 

친구의 정자들은 축제에 내보이지도 못한 채 버려졌다. 그날 이후 그는 한동안 “축제에 자기 정자를 가져온 미친놈”으로 불렸고, 방명록은 10장도 받지 못했다. 꼬리 두 개의 정자를 가진 그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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