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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11. 2020

전국 영화관에 플래카드를 걸자

- 봉준호의 아카데미 4관왕

영화: 살인의 추억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박두만(송강호)’은 자신만만하다. 그는 자신의 눈이 일명 ‘무당 눈깔‘이라며 “범인인지 아닌지 얼굴만 보면 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범인의 행적은 요연하고, 수사 실패는 거듭된다. 이후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의 얼굴을 움켜잡을 때가 돼서는 처음의 확신따위 온데간데 없다. 비오는 날, 컴컴한 터널 앞에서 박두만은 울상으로 읊조린다. “아. 시바 모르겠다...”  

    

작품상 받을 영화는 딱 보면 알지. 자신한 사람들도 이번 결과를 앞두고서는 그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작품상?......아. 시바 모르겠다...” 결과는 기생충. 봉준호는 단상으로 오르고. 타란티노, 마틴스콜세지는 앉아서 박수만 쳤다.

영화: 브로드웨이를 쏴라

영화를 찍어본 적은 없지만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만은 안다. 우디 앨런 작 <브로드웨이를 쏴라>에는 주인공으로 차기작을 준비하는 감독이 나온다. 투자를 받자니 투자자(마피아)의 내연녀인 발연기 폭발 여배우를 써야하고, 가성비 괜찮은 중견 배우는 연출에 관여하면서 영화를 망가뜨린다. 영화와 예술을 평생 공부했던 주인공은 엉망이 된 영화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할지 갈피조차 잡지못한다. 이리저리 방황하는데, 영화에 영자도 모르는 마피아 쫄따구가 생각없이 내뱉은 아이디어가 기가 막힌다. 빵빵 터진다. 관객의 마음을 문외한보다 모르는 전업예술가. 감독은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성공을 위해 그의 조언을 구하고 급기야 나중에는 거의 받아적는다.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알 수 있듯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2만 개의 구멍이 있는 두더지게임과 같다. 문제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무결한 결과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영화 제작은 소설을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인 것이다. 소설은 혼자 잘 쓰면 그만이지만 영화는 모든 것을 조율해야 한다. (조율이라 쓰고 최선의 타협이라 읽어야겠다.)

영화계에서 감독에게 쏟아지는 유독 거창한 찬사는 그 어려움을 모두가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가 어려운 조율을 최선으로 해내고 <기생충>같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건 실로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다.

 


봉준호는 영화만 잘 찍는 것이 아니라 심리전술의 대가이기도 하다. 어릴때, 친구가 나에게 뭘 시키고 싶을 때면 그렇게 말했다. "에에-! 너 못하지? 못하지?" 그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니거든!  할 수 있거든~!"하면서 언제나 말려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그의 인터뷰 어록 "아카데미는 그냥 로컬한 시상식이잖아"는 고도의 노림수가 아닐까싶다. 이에 발끈한 아카데미는 "아니거든! 우리 엄청 국제적이거든?!" 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으면서 상을 네 개나 던져버린 것이다. (물론 농담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사진을 하나 보았다. "00의 아들 서울대 교수 임용"이라는 플래카드는 영세한 가게 앞에 걸려있었다. 어렵게 키운 아들이 의대 교수가 되었다니 어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카데미는 커녕 '브런치 무비패스'에 당첨되었을때도 인스타에 스크린샷을 찍어올렸다.) 그래도 그걸 보는 사람들은 괜히 조금 민망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자랑은 어떤 능력이나 상황이 자신에게 당연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나이키를 슬리퍼쯤으로 생각하는 부자는 나이키 신상을 인스타에 찍어올리지 않을 것이다. 나이키 신상을 구해서 신나하는 사람은 자랑과 함께 자신에게 나이키를 실컷 살 만큼의 재력이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집에 뜨거운 물이 아무때나 나온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출처: AP신문

그렇다면 봉준호의 아카데미 4관왕이 네이버 메인에 떡하니 걸리는 일은 나이키 한정판 자랑이나 서울대 교수 임용 플래카드와 같은 것일까. 아카데미 4관왕이 전국민적 호응을 얻고 국가의 자부심이 되는 이런 현상은 한국 영화의 후진성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문화선진국가 미국(헐리우드)의 인정을 받고 기뻐하는 한국인들.' 누군가는 그렇게 평론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번 수상이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외국어 영화치고는 선전한 영화 정도가 아니라 역대 어떤 영화보다 열렬하게 세계적 지지를 받은 영화가 한국 감독의 모국어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기뻐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번의 감동은 한국 영화가 인정을 받았다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념비적 영화를 모국어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영화의 정서를 어떤 왜곡없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는데온다.


영화: 기생충

<헬로우 고스트>를 연출했던 김영탁 감독은 "정말 돈을 많이 벌면 길고 지루한 영화를 찍고 싶어요"라고 말다. 죽기전까지 한 번이라도 찍고싶은 대로 찍을 수 있는 감독은 흔치 않다. 봉준호가 이번의 성공을 등에 고 여기저기서 엄청난 투자를 받아서 그 어떤 것이든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내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는 그래서 덤으로 온다. (놀란이 다크나이트 이후 전권을 위임받아 인셉션을 만들어냈듯이 어쩌면 그도 자유를 얻을 것이다.) <기생충>으로 그의 최선을 보았다면. 이제는 그의 이데아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에 가슴이 뛴다.  


아카데미 4관왕 보도, 봉준호 신드롬. 이건 허용되는 국뽕이다. 우리는 한때 세계에서 축구 4등을 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봉준호는 칸과 아카데미에서 수상소감을 발표다. 월드컵 4강 때도 난리가 났는데 이정도가 유난인가. 까놓고 말해서 트레블을 달성한 축구감독은 종종 나오지만 칸과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영화감독은 봉준호가 유일하다.(한 명 더 있지만 지금은 그냥 빼자.) 

 

네이버

지금의 열광도 부족하다. 우리는 더 흥분해야 한다. 전국 영화관에 봉준호관을 하나씩 만들고 4관왕 축하 플래카드를 걸어야 한다. 앞으로 10년간 하루의 첫상영과 마지막상영은 기생충으로 해야 한다. 오늘부터 개봉하는 모든 한국영화의 오프닝에 봉준호 감독에 대한 찬사의 문장을 새기자. 당연히 헛소리지만, 아무튼 기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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