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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25. 2020

체했을 때는 자꾸 손 따는 게 직빵이라는 엄마

- Thank you

일요일 저녁에 치킨을 먹고 심하게 체했다. 새벽 한 시에 눈이 벌떡 떠졌고, 뱃속에서는 에일리언이 태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울컥울컥 했다. 그것은 영락없는 구토의 신호였다. 아찔함을 느끼면서 화장실로 뛰어가서 구웨엑- 하는 비명과 함께 속을 게워냈다. ‘구토라니. 소화가 잘 되지 않았나 보다.’ 일본에서 사 온 오타이산을 입에 털어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몸이 몹시 피로해서 금방 잠이 왔다.     


새벽 세시. 다시 한번 깼다. 직전에 겪은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내가 지금 두 번째로 깬 것인지, 아니면 꿈속에서 리플레이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너무나 생생했으므로 곧 현실임을 깨닫고 지체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두 번째로 토했고, 걸쭉하게 소화가 되다만 치킨들이 마저 쏟아졌다.     


새벽 다섯 시. 말도 안 돼. 한 번 더 깼다. 새벽에 세 번이나 깨서 토를 한 건 처음이었다. 이쯤 되니 내가 먹은 것이 치킨인지 공업용 젤라틴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번에는 거의 액체만 쏟아졌고, 코 점막이 부어올랐고, 눈은 충혈됐고, 몸에는 진이 다 빠졌다.     


일곱 시 이십 분에 일어나서 이를 닦다가 마지막으로 토했다. 참아보려고 했었는데, 불가항력이었다. 다시 한번 변기통에 얼굴을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주황색의 진액 같은 것이 2쿠왁(대충 새로 만든 단위다.) 정도 쏟아졌다. 지하철에서 검색해보니 담즙이라던데, 아무튼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비워낸 것이었다.      


그날 아침과 점심은 모두 걸렀고, 거의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일을 했다. 저녁에 본죽에서 야채죽을 먹었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나름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누워있으니까 어머니가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지난밤의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엄마는 “손 따줄까?” 했으나 “괜찮아요.”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오늘 퇴근하고 돌아왔더니 어머니 저녁을 차리고 계셨다. 나는 여전히 속이 불편했으므로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좀 그렇고 나중에 간단하게 알아서 먹겠다고 했더니 걱정이 되셨는지 손을 따주시겠다고. 이리 와보라고 끈덕지게 부르셨다.     


“늬 둘은(나머지 하나는 형을 지칭) 어릴 때부터 손 따는 게 즉효였어. 이리 와봐. 손 따줄게.”

“괜찮아요. 그리고 손 따는 거 효과 없대요.”


건강에 관심 많은 나는 의학 유튜브도 몇 개나 구독하면서 수시로 보는데, 체 했을 때 손 따는 것에 대한 영상을 본 기억이 났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손을 따는 행위는 검증된 바 없으며, 실제로 진행한 실험에서 유의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감염의 우려까지 있으니 권장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부산의사김원장 선생님과 닥터프렌즈에서 보고 들음.)     


나는 내가 보고 들은 내용에 대해서 조리있게 설명했으나 어머니는 기도 안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감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시고는 벌써 서랍장을 주섬주섬하고 계셨다. 오랜만에 사혈기를 꺼내 드신 어머니의 표정에는 사뭇 기대와 비장함이 배어있었다.      


나는 반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손 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대꾸하다가, 문득 내 자신이 너무 복에 겨운 투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취할 때는 혼자 아픈 걸 그렇게 서러워했으면서, 손 좀 따는 게 별거라고 잘난 척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었다.     


못 이기는 척 앉아서 참 오랜만에 손 딸 준비를 했다. 어릴 때는 되게 무섭고 떨렸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 겁 진짜 많았는데. 벌벌 떨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등과 팔을 쓸어주는 어머니의 손이 따뜻했다.     

만년필처럼 생긴 사혈기를 탁 하고 누르면 바늘이 퉁하고 튕기면서 손가락을 찌른다. 손가락 끝을 바늘이 치고 갈 때마다 검은 피가 새어 나왔다.     


“여기 새까만 피 나오는 것 좀 봐.”


‘손을 실로 칭칭 감고 있으면 산소가 빠져나가서 검게 보이는 거예요.’ 닥터프렌즈 우창윤 선생님의 말씀을 굳이 전하지는 않았다.      


우리 어머니의 손 따기 특징이라면 열 손가락을 다 딴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보통은 손톱 쪽 살을 바늘로 따는 쪽이 많은데 나의 어머니는 항상 손끝을 땄다. 키보드 칠 때 키보드에 닿는 쪽.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손톱 쪽은 너무 아프더라구. 그리고 원래는 손톱 사이 쪽을 따는 게 맞는데, 거기도 너무 아파.” 하셨다. 아들의 고통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왜 아프게 열 손가락을 다 따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효과가 있드라.” 하셨다. 하여간 알 수 없는 그녀만의 철학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인데, 어릴 때부터 체했을 때마다 손을 따면 직빵이었던 이유는 안 나았다고 하면 이 짓을 또 해야 될까 봐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이걸 한 번 더 해야 된다니, 차라리 위가 터져 죽겠어! 무의식 중에라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에 자가면역이 팽글팽글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결국 열 손가락에서 다 피를 빼냈다. 손끝이 얼얼한 게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각으로 가득했다. 피가 얼룩덜룩 묻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죽을 한 그릇 먹었다. 어머니의 표정이 꽤 뿌듯했고, 낫든 안 낫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속은 조금 불편하고, 더불어 손가락까지 조금 아프다. 키보드를 칠 때마다 손끝이 아릿한데, 그래도 이 기분을 까먹기 전에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수지침의 효능이 곧 나타날지, 아니면 별 진전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체기가 내려갔고, 몸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내일도 열 손가락에 바늘을 댈 수는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썼는데 몽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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