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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20. 2020

못생긴 그녀의 미칠 듯한 자신감

자신감은 매력이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나'라서 짜증날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은 언제나 아득히 멀다. 나는 털털하고 위트 있는 여자가 좋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귀여운 여자를 좋아한다. 나는 늘 귀여운 척하는 여자는 가증스럽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실제로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과하고 억지스러운 ‘귀척’에도 광대가 씰룩씰룩하는 편이었다. 아, 그런 내가 너무 싫은데 그걸 어찌할 수가 없어서 가끔(사실은 자주) 열이 받는다. 내 본능은 그걸 밀어내지 못한다. 귀여운 게 최고다. 진짜. 철이 안 든다.   

  

내 본모습이고 싶지 않은데 그게 나라서 짜증나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얼굴보는 것도 그렇다. 나는 여전히 사람의 외모에 수없이 휘둘린다. 예쁜 여자가 좋고, 잘생긴 남자가 좋고, 예쁘고 잘생기면 친해지고 싶다. 내면을 느끼고 사람을 총체적인 매력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외모에 따라 태도도 잘 달라진다.     


내 주변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꽤 있다. 그 사람이라고 외모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전혀 티 나지 않게 한다. 모두에게 정중하고, 다정하고, 외면적 가치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유별나다고 치고 넘기기에는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적지 않아서. 그렇지 못한 나는 자주 자괴감을 느낀다.     


이처럼 외모에 극히 휘둘리는 내가, 어느 때는 완전히 최면에 걸린 것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할 때 만난 Q였다.     


“나는 남자 얼굴 봐.”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와, 미친 건가?’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냐면 그녀는 너무도 동양적으로 찢어진 눈과 더불어 그리 예쁜 점을 찾아낼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매도 날씬함과는 거리가 먼, 통통과 뚱뚱을 넘나드는 체형이었다.      


그녀가 남자의 얼굴을 본다는 말은 나에게 너무도 생소하게 들렸다. 너는 못생겼으니까 얼굴 보지 마. 그런 차가운 마음이 아니라, 속으로만 생각해도 될 것을 입으로 내뱉는 게 너무 당당해서였다. 웬만큼 훈훈하게 생긴 사람도 그런 말을 잘 안하지 않나. (심지어 예쁘지도 않으면서!! 딱 그런 마음.) “너 연애 해본 적은 있어?” 그렇게 묻고 싶었다. 사실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례할 정도로 까칠한 말투에, 일 할 때의 면면을 보면 이기적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정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남.자.얼.굴.봐.”라니. 그 자신감에 조금 경악했다.     


그녀는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과 만나려면 키는 어떠해야 하고, 성격은 어떠해야 하고, 어떤 건 하면 안 되고, 어떤 건 할 줄 알아야 하고… 아주 가리는 것도 버라이어티하게 많았다. 나는 티 나게 헛웃음을 뱉으며 그녀와 종종 대화했다. “네가 아주 미쳤구나.” 그 당시에는 나도 한 까칠 했었어서 때로는 날카로운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잘하면 싸울 뻔하게 얘기한 적도 적지 않다. 서로 말을 막 한다면서.      


Q는 옷도 잘 입었다. 무난-하게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이 딱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미대생인가 음대생인가 아무튼 예술 쪽을 전공하는 애였다. 대단히 집이 어려운 것 같지도 않았지만 또 유별나게 잘사는 집도 아닌 것 같았는데, 사치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잘 꾸몄다. 그러니까,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할 줄 아는 애였다. 그게 멋졌다. Q가 어떤 애인지 알려면 영화 <아이필프리티> 를 보면 된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Q 생각을 많이 했다.


Q는 일관성 있게 자신의 캐릭터를 견지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났을 때, 어느날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내가 더 이상 그녀를 무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냥 가치 있고, 매력 있는 여자라고 느끼고 있었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우연히 썸 같은 걸 타게 되면 만나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만나더라도 손해 보는 기분은 아니겠다는 심정이었다. 외모지상주의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가 최면같이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거였다. 되게 의아한 기분이라서 혼자서 그 마음을 잠시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그래 서댐아, 너 같은 애들은 그런 자신감이 있어야 돼.”     


심지어 걔는 나에게 충고도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좀 자신감이 뿜뿜하던 시기였는데, 뜬금없이 내가 어중간하게 생겼다면서. 나 정도의 얼굴로는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어야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와, 너한테 그런 얘기 들으니까 좀... 기분이 심히 좋지만은 않아.” 내가 그녀의 외모를 무시하며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을 때도 그녀는 대서양에 태평양을 얹은 듯한 평정심과 여유로 나를 대했다. 


그녀는 나와 아르바이트를 같이 한 몇 달 동안 어떤 남자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리고는 연락이 끊겨 어떻게 사는 지도 이제는 모르지만. 언제나 상대를 평가하는 위치에 있었다. 같이 일하는 누구도, 그녀의 가치를 낮잡아 보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녀가 이후에 괜찮은 남자를 만났든지 못 만났든지. 아무튼 되게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에게 자신감이 주는 마력을 잘 배워서, 나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후로 조금은 더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 것 같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중간하게 생긴’ 것 치고는 연애도 곧잘 했다.


‘매력이 없으면 있는 척해라. 일관성 있게 속이면 그게 그냥 네 매력이다.’ 그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런 가르침을 얻었다.(가끔은 괴리감에 와장창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척'은 늘 조심해야 한다.) 나는 여자 얼굴 본다는 얘기를 차마 당당히는 못하는데 그녀는 아마 지금도 남자 얼굴 본다는 얘기를 하고 다닐 것 같다. 그녀에겐 그 외모지상주의마저도 인정해도 아무렇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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