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자주 없는 것에 대해 쓴다. 작가의 정의를 모아놓은 책이 있다면, 거기에는 아마 ‘없는 것에 대해 쓰는 사람.’ 혹은 ‘있는 것도 없음이 없다고 적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알 수 없다’라든가 ‘알 수 없었다.’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된다. 쓰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학술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소통의 관점에서든 ‘알 수 없다’는 말은,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시험에서는 오답이 되고, 사회에서는 하나마나한 나약한 말이 되니까. 그나마 글에서는 유효하다. 그 점이 참 다행스럽다.
나는 왜 그렇게 알 수 없는 게 많을까. 명료하고 명확한 표현을 하고 싶을 때, 알 수 없다는 말은 나를 늘 주눅 들게 한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었다.’를 사용하지 않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전하고 싶어 한다. 고민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알 수 없다’라고 적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적어놓고 한동안 곱씹다 보면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 ‘알 수 없음’이야 말로 비로소 완전한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다. ‘알 수 없다’는 말은 글에서는 그대로 옳다. 진짜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충만한 자신감으로 '없다'고 적는다. 존재가 없는 것에 대해서 쓴다. 있었다가 없어진 것들에 대해서 쓴다. 원래부터 죽 없었던 것들에 대해 쓴다. 없어질 것들에 대해서 쓴다. 늘 있어서 없었던 적이 없었던 것들에 대해 쓴다. 없어서 슬픈 것들에 대해 쓴다. 없어서 기쁜 것들에 대해 쓴다. ‘없음’ 그 자체에 대해 쓴다.
그렇게 ‘없다’를 주제로 쓰다보면 아무것도 없었던 종이 위에 글자라는 이름의 검은 얼룩들이 나타나고,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없음’을 통해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는 것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