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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05. 2020

이별이 온 것이 아니라, 이별을 했다

오늘의 반성문

누워서 이때까지 쓴 글을 몇 개 읽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본격적인 생각에 잠겼다.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문제는 ‘이별이 왔다’는 문장에 있었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혹은 살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글을 썼었는데, 그때마다 습관처럼 ‘이별이 왔다’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이별이 ‘온’ 게 아니었다. 나는 이별을 ‘한’ 것이었다. 내가 이별을 만든 거였다. 이렇게 비겁할 데가 있나. 이별이 오긴 뭘 와.


가만히 아름답게 잘 만나고 있었는데 어느날 똑똑 이별이 찾아와서, 어머! 이별이 왔네. 그럼 이별을 하자.


너무도 당연하지만 이런 시적인 이별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일종의 에세이 문법에, 작가적인 수사법에 심취해서는 그렇게 비겁한 말을 한 것이었다.     


오래전 읽은 대중 심리학 저서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미국에는 팀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편파 야구해설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팀이 승리할 때 “우리가 이겼다.”고 말하고 팀이 지면 “그들이 졌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한 우리의 여리고 비겁한 본능이 언어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거였다. '이별이 왔다'는 말도 그 본능의 반영이었으리라. 


2018년에는 갑자기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병을 얻었다. 몸에 갑자기 열이 오르면 좁쌀같은 두드러기가 온 몸에 퍼지는 병이었다. 보기 흉하기도 했지만 끔찍하게 따갑고 가려웠다. 발병원인도 정확히 규명되지 않아서, 치료법도 없었다. 평소 한의학을 무슨 미신처럼 취급하던 나는 한 달에 50만원씩이나 돈을 내고 한약을 지어먹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가벼운 언덕을 오르기만 해도, 지하철 계단을 오르기만 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고, 얼굴이 빨개졌다. 징후도 없이 하루아침에 생긴 병이어서 나에게는 신이 내린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즈음해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당시의 나는 언제 솟아오를지 모를 두드러기 때문에 너무 예민했고, 그래서 그녀에게 잘해주지 못했다. 다정다감하고, 똑똑하고, 낭만적인 나의 모습에 이끌렸던 그녀였는데, 그때 나는 다정하지도, 똑똑하지도, 낭만적이지도 못했다. 한 번은 피자를 먹는데 토핑이 입에 자꾸 묻어서 막 짜증을 냈다. 인상을 쓰면서 언짢아했다. 피자에게 화가 난 것도, 그녀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 하루 종일 두드러기를 신경쓰느라 답답함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가 그 사소한 불편함에 문득 감정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실망한 것 같았다.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머지않아 그녀가 이별을 고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정중하고 따뜻한 이별의 말을 해주었다. 내가 현명하게 풀 수 있었던 몇 번의 다툼을 꽤 심각하게 만들고 차가운 말로 그녀의 자존감을 깎았는데도 마지막까지 나에게 품위 있게 대해주었다. 나는 제대로 된 사과도 못하고 그녀를 떠나보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생긴 병은 또 이유 없이 갑자기 호전돼서 얼마 뒤 거의 사라졌다. 아주 가끔 아주 약한 강도로 올라오는 정도가 됐다. 그리고 난 그제서야 그 이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녀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그때 사실 정말 미안했다고, 뒤늦게라도 연락을 할까 말까 아주 고민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 그녀가 내 연락을 달가워할 것 같지 않아 끝내 마음을 접었다.      


이것은 한 예시일 뿐이다. 각각의 시기마다 나의 모든 이별에는 나의 책임이 있었다. 있었다뿐만이 아니라 많았다. 그런데 나는 무슨 염치로 이별이 ‘왔다’는 문장을 남발했을까. 어쩌자고 그렇게 무책임하고 비겁했을까. 아주 반성한다.


이별을 했다.했다.했다. 손바닥을 때리듯이 나를 가르친다.
 

태생이 안일해서, 나에게는 자주 아픈 말이 필요하다.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이별이 왔다’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별이 똑똑 노크를 하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의 집을 해머로 허물고 이별이라는 팻말을 꽝꽝 때려 박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별이 왔다고 표현하는 글도 절반만 믿을 생각이다. 그에게도 이별이란 게 그렇게 낭만적으로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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