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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15. 2020

악몽도 멈추는 글쓰기

표현의 수단으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6년 동안, 일 년에 꼭 한 번씩 꾸던 꿈이 있었다.


꿈속에서 정신을 차리면 넓은 공간에 끝도 없는 일직선의 길이 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 바깥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지평선일 뿐이다. 베이지 색의 방대하고 텅 빈 공간. 나는 펼쳐진 길을 무의식적으로 계속 걸어간다. 길은 흙색이고, 양쪽으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드문드문 가로등과 나무 벤치가 있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저 멀리 어떤 벤치에 '둘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키가 나만한 '아기공룡 둘리'다.


둘리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면서 눈깔사탕을 핥고 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는 정해진 것처럼 그 옆에 앉고 둘리와 같이 정면을 바라보다가, 그러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봐야할 것만 같은 강렬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린다. 하늘은 바닐라색인데, 어느 지점부터는 톱니바퀴로 가득하다. 고개를 완전히 꺾어 수직으로 올려다보면 하늘의 정중앙에 아버지가 있다. 그는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서 천천히 안쪽으로 구겨져 들어가고 있다. 내가 아버지를 발견할 때쯤엔 이미 상반신만 남아있는 상태다.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내 쪽으로 뻗으면서 뭐라고 소리친다. 소리친다는 것은 표정과 입모양을 통해 확인될 뿐 어떤 것도 들리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몸이 계속 빨려 들어가 거의 가슴께쯤 남았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깬다.


소름끼치는 꿈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꿈이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 까지 매년 딱 한 번씩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도, 세 번도 아닌 한 번. 건너뛴다거나 하지도 않고 일 년에 딱 한 번씩만 꾸었다.


세 번째로 꾸었을 때는 둘리 옆에 앉는 순간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이건 그 꿈이다. 어떻게 같은 꿈을 세 번째 꿀 수가 있지? 이건 나에게 매우 힘든 꿈인데. 고개를 들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어찌할 도리 없이 나는 나의 아버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봐야 했다. 꿈에서 깨고 난 뒤 생각했다. '이런 식이라면 이 꿈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꾸게 되겠구나.' 매 맞을 것을 알고 학교에 가는 것처럼 기분이 찝찝했다. 이런 불길한 꿈을 앞으로 매년 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꿈은 그 이후로도 반복되었다. 네 번째로 꾸었을 때는 멀리 둘리가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부터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며 소름이 돋았다. 꿈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다섯 번째로 꾸었을 때는 길을 걷는 중에 깨달았고, 여섯 번째로 꾸었을 때는 길 위에 내가 놓여 있는 순간부터 꿈이라는 걸 알았다. 극심한 불안 속에, 그때에도 나는 그 꿈이 상영되는 장면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나 일 년에 딱 한 번씩 매년 꾸는 꿈이 있어.”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을 모아놓고 얘기했다. 그 꿈의 스토리와, 내가 느낀 감정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친구들은 주의 깊게 들어주었으나 크게 몰입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둘리라니, 무슨 꿈이 그래.’ ‘그게 무섭니? 난 하나도 안 무서울 것 같은데.’ 뭐 그런 반응들이었다. 나는 아마 올해도 그 꿈을 한 번은 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얘기하고 보니 그 꿈이 나에게는 일련의 전통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고, 묘하게도 한편으로는 조금 기대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그 날 이후 매년 반복되던 그 악몽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악몽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악몽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서야 문득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 이상 끝없는 길과 둘리로 시작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악몽조차도 너무 바라면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순간은 한참 뒤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왔다.


악몽이 사라졌던 이유는, 내가 친구들에게 그 꿈에 대해서 세세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꿈은 나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어떤 불안이라든가, 절망이 해소되지 않고 반영되던 것이었는데, 친구들에게 그 꿈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대화를 통해 해소되었고, 그래서 다시는 꿈으로 반복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이제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깨달았다. 나는 우울이나, 이별 후의 감정이나, 불안이나, 고민과 걱정을 극복하기 위해서 언제나 ‘표현’ 힘을 빌려야 하는 존재다. 글쓰기는 가장 효과적인 표현의 수단이다. '말하기'도 좋지만, '글쓰기'는 쓰고 난 다음 결과가 남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쓰면서 해소되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그 감정에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까지 깨닫게 다. 


나에게 글쓰기그 자체로 완전하다. 브런치를 보다 보면 때로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느낀다. 그들 중 몇몇에게는 글쓰기가 오직 어떤 수단처럼 보인다. 그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글쓰기는 전적으로 목적에 가깝다. 글이 완성되면 나는 후련해진다. 그래서 그 글로 더 이상의 어떤 것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나의 글에 만족하고, 평생 쓰는 사람일 것이므로 이미 작가인데, 뭣하러 작가가 되려고 애를 쓰겠냐는 생각이다.


나는 글을 통해 어떤 지위를 얻거나,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을 글자로 치환하기 위해서 쓴다. 배고파서 밥을 먹고, 먹고 난 뒤 만족하는 것처럼. 쓰고 싶어지면 쓰고, 쓰고 나면 만족스럽다.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을 내뱉으니 악몽도 멈추던데, 표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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