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Jun 07. 2020

날벌레의 임종

- 나는 지금 내 삶 어디 쯤에 있을까

오늘 낮,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고 있을 때 키보드 옆쪽으로 아주 작은 날벌레 한 마리가 나풀나풀 착륙해 앉았다. 굳이 잡을 생각은 안 들어서 계속 화면을 바라보았다. 5시간 쯤 지나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키보드 옆에 그 날벌레가 아직도 앉아있었다. 보통 이런 생물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인데, 움직임이 없었다. 티슈를 뽑아서 집어보니 이미 죽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몇 시간 전에 내가 보았던 그의 착륙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던 것이다. 직선으로 추락한게 아니라 곡선을 그리면서 착륙했으니, 나름대로 마지막 힘을 낸 것이었을 테다. 나도 모르게 그 날벌레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때는 2012년의 여름, 군대에서 중대전술훈련을 나갔던 밤이었다. 나는 일병 선임 두 명과 같은 조였고, 우리는 띄엄띄엄 자리를 배치 받았다. 우리가 수비할 차례였고, 적 중대는 야음을 틈타 우리의 구역을 통과할 것이었다. 호를 깊게 계단식으로 파고 거기에 앉아서 밤새 잠도 자지 못하고 지키는 게 나의 임무였다.      


선임들은 돌아가면서 땅을 파자더니 지들은 삽질을 한 열 번 정도만 하고 금세 나에게로 턴을 넘겼다. A가 삽질 열 번 그리고 나에게 토스, 내가 5분 쯤 땅을 파고 B선임에게 토스, B선임은 다시 땅을 열 번 정도 파고 나에게 토스. 계속 나만 땅을 파야하는 형세였다. 입에서 아주 욕이 나올랑 말랑 했다. 군필자들은 모두 알겠지만, 한국의 산은 죄다 돌산이라 쑥쑥 파지지가 않는다. 웬만큼 보송한 흙에서도 딱딱한 돌덩어리를 계속 만난다. 여름이라서 날도 굉장히 더웠기 때문에 정말 탈진할 뻔 했다.      


결국 세명이 들어가 앉을 만한 참호를 파고, 튼튼한 나뭇가지로 기둥을 세워 판초우의를 덮은 다음 위장까지 했다. 나중에는 꽤 그럴싸한 감시호가 되었다. 추진된 저녁식사를 배급받아 먹은 뒤에는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간부들이 계속 순찰을 돌긴 했으나 새벽 1시를 기점으로는 그마저도 뜸해졌다. 선임들은 당연하게 잠에 들었다. “서댐아 뚫리면 좆된다. 잘 지켜라.” 그 말을 남기고 금세 곯아떨어졌다. 양쪽의 선임들은 각자 벽에 기대 잠에 빠져들었다. 가운데 앉은 나는 앞쪽 멀찍이 보이는 공장과, 좁은 아스팔트 길과, 경계등 불빛, 거기에서 아직 남아 일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밤을 보내는 동안 견딜수 없었던 것은 무수한 벌레였다. 30cm 는 될법한 지네가 나오기도 했고, 거미가 나오기도 했다. 날파리와 모기도 수없이 날아다녔다. 나는 선임들이 잠든 틈에 낙서같은 것을 하려고 수첩을 챙겨왔었는데, 수첩을 꺼내려다가 내 바지 위를 걸어다니는 개미를 발견했다.      


개미는 집에 돌아다니는 집개미가 아니라 산개미였다. 크기가 크고 선명한 검은 색을 띠었다. 나는 개미가 내 몸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이 몹시 불쾌했고 지체없이 모나미 볼펜으로 개미의 몸을 짓이겼다. 소리인지 촉감인지 ‘띡’하는 감각이 있었다. 개미가 순식간에 두동강이 났다. 손등으로 훌훌 털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개미가 한자로 의(蟻)라는데, 그 순간 문득 ‘나는 살의자가 된 것인가.’ 생각했다. 개미를 죽인 죄책감에 괴로워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움직이던 개미를 내가 너무도 가볍게 죽여버렸다는 게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삶과 죽음의 간격이 이렇게 찰나라니. 어딘가 찝찝함을 느꼈던 것 같다. 개미의 생명이나 나의 생명이나 결국 하나의 생명일 텐데 조금 경솔했다는 기분. 그러면서 우주의 순환이랄까, 잠깐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살아있지 않은 것이 살아있는 것이 되고, 살아있는 것이 살아있지 않은 것이 되는 것.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허무하구나.’ 개미의 두 동강 난 몸을 보면서 그 날만큼은 그게 남일 같지 않아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내 키보드 옆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그 작디작은 날벌레가, 마치 넓은 우주의 나처럼 느껴지는 괜시리 센티멘털해지는 밤이다. 올 여름 셀 수 없이 많은 모기를 잡아댈 나이기에, 이게 무슨 쌩뚱맞은 감성인가 싶기도 하지만 거짓된 생각은 아니니까 남겨두려고 한다. 덩달아 나의 죽음이 언제 어떻게 찾아오게 될지도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내 삶 어디쯤에 있을까. 글을 쓰면서 막연하게 가늠해 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 키는 176cm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