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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23. 2020

일병, 이등병 비요뜨 금지

내무부조리와 황제복무

2011년 10월에 입대했다. 입대 전에도 선배들에게 군대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내무부조리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막상 겪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논리적인 편에다가 개인주의적 성향까지 강한 나는 군대에서의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를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군대에서는 다들 생각을 하지 않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얼토당토않은 관습들이 너무나 많았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조리는 우리 부대 특유의 어미 사용이었다. 누가 만들어서 박아두었는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것입니까?”로 질문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나 유래, 목적 같은 건 아무도 몰랐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었다.     


김철수 병장님 식사하러 가시는 것입니까? (O)
김철수 병장님 P.X 다녀와도 되는 것입니까? (O)
김철수 병장님 오늘 근무 있으신 것입니까? (O)     


이 얼마나 어색하고 비효율적인 말투란 말인가. 심지어는 선임이 “야 지금 몇 시냐?”라고 물어도 “15시인 것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15시입니다. 라고 하면 되잖아!!!’ 속으로 열불을 냈다. ‘식사하러 가시겠습니까?’ ‘잠시 전화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오늘 근무 있으십니까?’ 이런 자연스러운 말을 두고 저렇게 어색한 근본도 없는 말투를 쓰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내던 생활관은 침대가 아니라 평상처럼 넓게 만들어놓은 침상으로 되어있었는데, 몇 칸 옆에서 선임이 잠깐 와보라고 불러도 침상을 가로질러 걸어가서는 안 되었다. 2M정도 옆에서 부르고 있으니 그쪽으로 두세 걸음만 걸어가면 되는데도, 후임은 선임 자리를 침범할 수 없기 때문에 슬리퍼를 신고 내려와서 선임의 공간 앞쪽으로 걸어간 뒤, 다시 슬리퍼를 벗고 그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하냐고 물어보았더니, 관물대를 기준으로 각자의 공간을 구분하는 가상의 선이 있다고 생각해야한다고 했다. 선임은 후임의 공간을 마음대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자유롭게 딛을 수 있는 땅이 점점 넓어지는 거야. 그게 짬 먹는 재미지.’ 맞선임은 그렇게 말했다. (이런 부조리가 자잘하게 50개는 있었던 것 같다.)      

침상 가로지르기 금지

선임은 나를 하루 종일 불러 제끼는데 매번 슬리퍼신고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하려니까 너무나 귀찮았다. 내가 병장되면 이거 없애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이후 내가 권력을 잡고 나서 결국 없앴기는 했다. 나는 내가 그 오랜 악습을 없앴다는 사실이 뿌듯해서 전입 온 신병들에게, “얼마 전까지 일이등병은 침상을 가로질러 가면 안 되는 악습이 있었는데, 그걸 내가 없앴다.”고 생색을 냈었는데, 그이들은 ‘당연한 걸 가지고 무슨 생색이야?;;’하는 표정을 흐릿하게 짓길래 은근 열받은 기억도 있다.     


소대마다, 소대 안의 분대마다 양말 개는 법, 속옷 개는 법도 조금씩 다 달랐다. 그래서 분대개편이나 드물게 소대개편이 있을 때마다 일이등병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새로 배워야 했다. 당연히 각 소대 분대마다 부조리도 조금씩 달랐다. 내가 가장 압권이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는 3소대의 ‘비요뜨 룰’이었다.


3소대에서는 일이등병이 비요뜨를 사먹을 수 없게 했다. (P.X에서 버젓이 팔고 있는 상품인데도.) 3소대에 있는 동기가 “서댐아... 너 비요뜨 사서 나 한입만 주면 안 되겠냐?”고 하기에 알게 됐다. 무슨 그런 부조리가 있냐고 물었더니 “군생활도 안 꺾인 주제에 비요뜨를 꺾어먹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대.”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군생활을 절반 이상 한 것을 군대에서는 ‘군생활 꺾였다’고 표현하는데, 아직 상병이 되지 않아 군생활을 절반도 하지 않았으니(꺾이지 않았으니) 건방지게 비요뜨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지금 적어놓고 보니 무슨 농담 같은데, 몰래 먹다 걸리면 줄줄이 맞선임이 호출되는 나름대로 엄한 부조리였다. 사람이 이렇게 치사해질 수 있구나. 혼자 되뇌었다. (나와 같이 이 유치하고 어리석은 부조리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던 동기 녀석은 상병이 된 후 몰래 비요뜨 사먹는 후임을 잔인하게 혼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것입니까' 말투를 가르치는 선임이 되었고.)      


최근 대기업 부회장 아버지를 둔 공군 일병의 ‘황제 복무’ 논란이 뜨겁다. 외출증도 없이 근무지를 자유롭게 이탈하고, 부사관에게 빨래 심부름을 시키고, 빈 생활관을 혼자 널찍하게 썼다는 그 일병의 소식을 듣고나서 얼마나 씁쓸했는지 모른다. 비요뜨를 못 먹게 하고, 선임들 눈을 피해 몰래 비요뜨를 사 먹던 우리의 그 아웅다웅은 그 뉴스 앞에서 얼마나 초라해지는가.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 유치함과 잔인함을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밖에 없다.


고개를 아무리 돌려도 거슬리는 그 반복되는 뉴스를 몇 번이나 보고 읽으면서. 공군 일병에게, 대기업 부회장이라는 아저씨에게 나는 괜히 한 번 묻고 싶어진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박탈감을 주었는지 아시는 것입니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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