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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17. 2020

개인적인 행복을 택할 것

현대판 ‘열녀’로 가득한 도시

‘강성 문씨’는 이름도 없이 자신의 성씨로만 남아있다. 그녀는 진주사람 하상태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열녀’라는 수식어와 붙어 전해지는데, 이는 그녀가 ‘숭고’하게 죽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평소 성품과 행동거지가 정숙하였고, 시부모를 도리에 맞게 잘 섬겼으며 남편이 죽자 그의 염습을 손수 하였다’는 그녀는, 제사를 잘 끝낸 후 독약을 마시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죽기 전 상자 속에 염습과 장례에 쓸 것을 미리 쌓아 두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남편이 사망하였을 때 그녀가 이미 죽을 결심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삶은 ‘열녀’라는 단어로 요약되었으며, 삶의 개인적인 희로애락은 모두 소거되었다. 마지막 행적만이 유효한 채로.     


진주 지방에서 아직도 남아 전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2020년의 오늘날 읽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착잡해진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지나간 자리, 열녀라는 타이틀은 초라하고 남은 것은 오로지 젊은 여인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시묘살이는 어떤가,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부모의 무덤 옆을 지키고 앉아 3년의 시간을 보냈을 조선의 효자들을 생각하면, 이제는 존경스러운 마음보다는 애달프고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그렇게 공고한 유교사회라도 도리를 지킨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의 기록에는 관습보다 개인적 행복을 택하고 차라리 조롱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천하의 불효자식이라는 조롱 속에서도 시묘살이를 하지 않은 양반댁 자제. 남편이 죽고 얼마 뒤 다른 남자와 새살림을 꾸린 아녀자 등. 그들은 대의를 따르지 않고 사소한 행복을 누렸다는 죄로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다.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이 아득할 따름이지만 아무튼 그런 시대였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의 기준쯤은 적당히 무시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갔고 지금 와서 보면 그들이 옳았다.     


나는 우리도 열녀를 포기한 아녀자, 3년상을 포기한 양반댁 자제처럼 살아야한다고 자주 생각한다. 오늘날, 여전히 시대가 만든 관습은 얼마나 많은가. 번듯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몇 십 년을 저당 잡히고, 기업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영혼을 팔아 일을 하고, 오로지 뽐내기 위한 여행을 하고, 말도 안 되게 비싼 돈을 들여 하루의 결혼식을 치르고, 그런 결혼식에 억지로 참석해야만 하는 일련의 관습들은 현대판 ‘열녀 추대’ 혹은 ‘시묘살이’가 아닌가. 시스템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지겹도록 포기하게 만든다. 그 눈치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불행해진다.     


남편을 따라 자결한 ‘강성 문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스템에 종속되면 헛되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파멸할 수도 있다. 불행하기는 더더욱 쉽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깨고 나와, 자신의 기준으로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 

    

어지간히 자존감이 낮은 여자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점프한다면, 결코 남편을 따라 자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을 여의고 평생 정절을 지킨 여자를 ‘열녀’로 칭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교적 모범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 보았으므로 더는 고리타분한 시스템 따위에 휘둘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도 200년 뒤의 미래에서 현재로 점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면 좋을 것 같다. 그럴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관습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행복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혹시 ‘열녀’처럼 살아가면서 ‘열녀’를 안타까워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 삶에 잠식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종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의 헛된 도리에 휘둘리지 않고, 개인적인 행복을 찾아가자고 다짐한다. 200년 뒤의 사람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냐고. 우습게 여길 일들을 가만가만 따져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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