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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03. 2020

하늘에 구멍 뚫렸니

비오는 밤의 넋두리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떠올리면서 하늘을 본다. 올 여름에는 비가 하늘의 일인 것만 같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하염없이 내린다. 지치지도 않는구나. 때로는 내리고, 어떨 때는 뿌리고, 드문드문 쏟아지고, 퍼붓는다.      


비가 오면 어쩐지 실내는 더 아늑해지니까 나갈 일이 없으면 좋을 텐데. 출근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 요즘의 내 일상에서 비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우산을 챙겨야하고, 옷도 젖고, 습하고 찝찝하다. 비가 오면 경상도 말로 참 ‘걸거친다.’ 거추장스러운 일이 너무 많아진다. 실은 그래서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 때문에 사람도 죽는다. 뉴스로 지하차도에 갇혀 죽은 여인의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씁쓸했다. 저기 중국에서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다고 하고, 일본에서도 사람이 많이 죽었단다. 이 동네 나라들 모두에서 난리가 났다. 집이 떠내려가는 기분은 어떨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정수기에 담겨있는 가소로운 물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거, 참 적응되지 않는다.     


괜히 사람들의 마음도 축축 처지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의 어떤 장면이 생각난다. 한주 내내 비가 오던 때였는데, 그 중 하루였다. 창밖은 누가 꼼꼼하게 칠한 것처럼 회색빛이었고, 우리는 자습을 하고 있었고, 빗소리가 일정하고 은은했는데, 선생님이 안계셨는데도 교실이 참 조용했었다. 다들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듯이 울적한 기분이었다. 책상에서 모두 등을 굽어놓은 채로 공책에 샤프로 뭘 쓰고 있었다. 빗소리와 슥슥 글씨 쓰는 소리, 침울한 분위기, 다정함 없이 쓸쓸한 모습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무튼 비가 지루하게 내렸던 날들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 뭉클한 기억은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학교 갈 때는 비가 안 오더니 끝날 쯤에 쏟아졌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기여서, 따로 연락할 방법도 없었고 그냥 엄마가 우산들고 오기를 바라면서 기다려야했다. 1층 중앙현관으로 나와보니 엄마들이 다들 우산들고 자식들을 데리러 오신 상태였다. 북적북적했다. 나도 엄마를 찾았는데, 우리 엄마는 보이지를 않었다. 친구들은 엄마랑 우산 쓰고 하나둘씩 집으로 가는데 나만 거기 계속 서 있었다. 꽤 오래 서서 기다렸는데도 기약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어쩐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비를 맞으며 집에 가기로 했다. 소심한게 우산 있는 누구랑 같이 쓰자는 말도 못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홍릉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였는데 언덕을 쭉 올라가다가 다시 주택가를 내려가야 하는 길이었다. 터덜터덜, 비를 흠뻑 맞으면서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육교가 나왔다. 평소에는 지나가면서 밑으로 쌩쌩 달리는 차도 구경하고 그랬었는데, 그날은 울적해서 그냥 바닥만 보고 걸었다. 왜 우리 엄마는 날 데리러 오지 않았을까. 슈퍼마켓 문을 닫고 와야 해서 그렇겠지? 아니면 엄마가 가게에만 있어서 비가 오는 걸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쯤을 했던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그리하여 원망도, 슬픔도 비로소 사라졌을 때, 저 멀리서 엄마가 보였다. 우산을 쓰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네잎클로버처럼 눈에 확 띄었다. 엄마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나는 울었다. 엄마한테 뛰어갔다. 그 다음의 기억은 없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엄마를 기다렸고, 비를 맞으며 걸었고, 엄마를 발견해서 뛰어 안겼고, 뒤늦게 펑펑 울었다는 것까지다.     


아마도 그 이후로 별일 없이 다정하고 무사하게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바보였던 나에게는 달려가 안긴 순간 그날의 모든 결핍이 해소되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비오는 날을 만났을까. 빗소리를 차분히 듣고 있자니 비가 내린 날마다의 내가 매번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떠올려보게 된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우울한 날이 있었을 것이고, 훨씬 더 많은 애틋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존재했을 날들을 가만가만 더듬어본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도 내내 비가 내릴 것 같다. 하늘에 구멍 뚫렸니. 작작 좀 하자. 짜증도 좀 부리고 싶다. 축축 처질 것만 같아서 미리 겁난다.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의 변덕을 묵묵히 받아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은 어찌나 무력한지. 때로는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다. 이 장마가 얼른 끝나고 쨍한 날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비 내리는 밤하늘을 보면 막막할 뿐이지만.    

  

비도 쉼없이 오고 해서, 그냥 넋두리로 이런저런 기억들을 함께 뒤섞어 써보았다. 이제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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