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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28. 2020

모두가 방패연을 부수기 시작했다

-나로 살아가기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미술시간, 그날의 활동은 방패연 만들기였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준비물’이라는 게 따로 없다는데, 그때는 전날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사가지고 갔어야 했다. ‘왜 문방구 아저씨는 이천 원짜리 방패연을 이천 만원이라고 하는 걸까?’ 궁금해 하면서 준비물을 산 기억이 난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선생님에게 인정받은 적은 드물었다. 왜냐하면 시킨 대로 만든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방패연을 만드느라 열심히였는데, 나는 종이에다가 대나무살을 붙여가지고 남들하고 다 똑같은 방패연을 만드는 게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선생님은 애들이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별로 관심도 없으셨기 때문에, 도떼기시장이라도 되는 듯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방치되고 있었다.     


나는 방패연 세트의 재료들을 가지고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 탄성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몸체가 되는 나무는 여러 살을 합치고 엮어서 길쭉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양쪽 끝에 실을 감고 팽팽하게 묶었다.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실을 꿴 부분에 본드를 단단히 칠했다. 본드가 굳는 동안 남는 대나무살로 화살을 만들었다. 누가 다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촉은 뭉툭하게 다듬었다. 실에 화살이 딱 걸리도록 을 냈다. 화살이 날아갈 조준부에도 길을 내기 위해 칼집을 냈다.      


활과 화살을 나름대로 완성하고 교실 뒤쪽의 사물함에 쏘아보았다. 팽팽한 실의 장력이 느껴졌고, 오른손을 놓자 화살은 내가 바라던 대로 움직였다. 처음 만들어본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곧고 빠르게 화살이 날아갔다. 그걸 지켜보던 남자애들의 입에서는 “우워!”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화살을 몇 개 더 만들어서 복도로 나갔고, 애들은 우르르 따라 나왔다. 나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화살을 쏘아 보였다. 복도 멀리까지 멋지게 날아갔다. 이번엔 여자애들도 구경했다. 조금 으쓱했다. 교실이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해지고, 애들은 교실로 돌아가 방패연을 부수기 시작했다. 다들 활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날의 활동은 갑자기 고구려의 기상으로 가득해졌고, 나는 교실을 순회하면서 노하우를 전수했다. 감각이 없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거의 만들어주다시피 했다. 친구들은 모두 만족해했다. 선생님은 어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우리들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연을 날릴 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방패연을 만들고, 운동장에 나가서 띄워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즈음의 미술시간이란 뭘 만들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종이 칠 때까지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신 탓에 우리가 활을 쏘면서 놀았던 것은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었다. 혼나지도 않고, 신나게 놀았으니 완벽한 미술시간이었다. 나는 뿌듯한 기분을 하루 내내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끝났다면 귀여운 에피소드인데, 다음날 분위기가 조금 심상치 않았다. 부반장이었던 성규가 팔에 깁스를 하고 온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심각하게 놀랐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앞으로 불러 혼내셨다. 처음에는 왜 혼나야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곧 활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성규는 모두가 활을 만들던 시간에도 방패연을 꿋꿋이 만들던 친구였는데, 사실은 활이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집에 가서 방패연을 부수고 혼자서 활을 만들었는데, 팽팽하게 휘어있던 활의 실이 끊어지면서 나무가 팔뚝을 깊숙이 긁었다는 것이었다. 피가 아주 많이 났고, 살이 찢어졌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눈물이 많은 편이어서, 조금만 혼나도 울기 십상이었는데, 그날만은 울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혼나면서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내가 내 취향대로 행동하고, 사람들이 내 영향을 받아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저 짜릿했던 것이다.  

    

그날의 경험 때문인지 나는 별로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취향이 멋있고, 재미있다고 진심으로 느낀다. 언제나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서 한다. 내 취향대로 글을 쓰고, 그림 실력과 상관없이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린다. 동굴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기타를 치고, 내 마음대로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붙인다. 시를 쓴다. 경복궁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 근처에서 초계국수를 먹고, 길을 걷다가 맥주도 마신다. 요즘에는 갑자기 종이접기가 하고 싶어서 색종이를 사서 열심히 접고 있다.      


남들이 발을 맞춰 걸을 때 혼자 엇박자로 걷는 기분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존재감을 심어준다. 백일장에 단어 하나만 가득 채워 냈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칸쵸 박스로 토끼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쫀드기나, 아폴로를 집어넣게 했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혼자 DVD방에서 성룡 영화를 몰아보던 날을 떠올린다. 헌책방에서 하루종일 남들이 써놓은 메모를 찾아 읽던 날을 떠올린다. 누군가가 보기에 그것이 비록 괴짜 흉내에 불과하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긍정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라서 좋은 기분, 그 두둥실 떠오르는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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