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과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모두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피’의 문제일 것이다. <어느 가족>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일 수 있음을 역설했다면, <남매의 여름밤>은 오로지 피로 이어진 이들로 가족을 말한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그렇다. <남매의 여름밤>에는 피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사별한지 오래고, 아빠는 엄마와 이혼 혹은 별거중이며, 고모도 남편과 갈라섰다. 그래서 남은 것은 홀로된 할아버지와, 옥주와 동주라는 남매와, 그리고 고모와 아빠(이또한 남매) 이렇게 다섯이다.
처음에는 옥주와 동주가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이 어린 남매에만 집중하게 되지만, 곧 고모의 출현으로 두 세대의 남매가 서로 번갈아 나타나게 된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뻔하고 단조롭게 흘러갈 수 있었던 남매의 여름날이,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로 갈라지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서로를 보완해준다는 데 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우리는 왜 이 남매들을 보면서 감동할 수밖에 없을까? 그건 그들이 보여주는 서투름,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따뜻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부재라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이 네 명의 남매들은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때로는 미워하면서 상처를 안고 간다.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딸과, 애교 많은 아들은 아버지를 지키고, 속 깊은 고모와, 장남으로 애쓰는 아빠는 할아버지를 지킨다. 하지만 때로 딸은 어긋나고, 아들은 너무 어려 철이 없다. 고모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아빠는 무능력하다. 이런 모습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두발로 휘청이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이 가족들도 위기 속에서 각자의 노력으로 페달을 밟아간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에서 제대로 ‘밥’을 먹는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제대로 밥을 차려 먹는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먹는 밥과 마지막의 찌개와 먹는 밥뿐인데 장례식장의 식사는 꿈이었고, 마지막의 식사는 옥주가 울면서 2층으로 올라가느라 중간에 끊기고 만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먹는가. 이들이 먹는 것은 국수다.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온 첫 날에는 콩국수를, 이모가 왔을 때는 잡채를 먹고, 그 다음에는 비빔국수를 먹는다. 어린 남매 둘이서는 라면을 먹는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이들이 먹는 국수는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먹는 국수는 ‘나누어’ 먹는다는 속성이 있다. 밥이 각자의 공기에 담아먹는 음식에 그친다면, 영화 속에서 국수는 나눈다는 분위기가 짙다. 콩국수를 덜어주는 장면이나, 잡채를 손으로 집어 맛보여주는 장면, 누나의 비빔국수를 챙겨 같이 먹으려는 장면, 한 냄비의 라면을 덜어먹는 장면을 보면 국수야말로 이들이 진정으로 끊임없이 마음을 나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집도 <남매의 여름밤>의 배경으로 잘 어울렸다. 인천의 2층 집은 어느 시대에 지어졌을지,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살았고, 살고 있는지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그 집에서 어른 남매는 자랐을 것이다. 이 집이 2층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데, 2층 때문에 부각되는 1층의 모습 때문이다. 2층에서 1층, 그리고 마당으로 내려올수록 현실에 가까워진다. 2층에서는 보통 어린 남매들이 머물고, 그들의 간단한 싸움이 벌어질 뿐이지만, 1층에서는 할아버지의 무거운 병환이 깔려있고, 마당까지 내려오면 갖가지 어른들의 갈등들이 펼쳐진다. 땅에 가까워질수록 복잡하고 난감한 현실이 뚜렷해진다.
영화 후반부,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집을 팔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옥주는 아버지를 나무란다. 아버지는 지난 옥주의 신발 사건을 들먹이며 반박하고 옥주는 말을 잃는다. 신발이 집과 연결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아버지는 결국 집을 팔지 못했을 것 같다. 옥주가 남자친구에게 선물한 신발을 회수하고, 중고거래에도 실패했던 것처럼. 아버지는 내놓은 집을 다시 물렀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2019)
<남매의 여름밤>은 옥주의 서러운 울음으로 끝난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간 옥주는 숨이 넘어갈 듯 운다. 울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할아버지는 어째서 그토록 대사가 없는가, 옥주와 할아버지는 어떻게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그렇게 깊어졌을까. 나는 그것이 ‘피’라고 생각한다. 남 같았던 할아버지가 소중한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와의 어떤 뚜렷한 추억이나 대화나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으로서의 연결이 아버지와 고모와 동생을. 그리고 자신까지 관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옥주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토록 미워하던 엄마와도, 자신은 그렇게 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가능한 일임을. 그리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운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