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Nov 05. 2020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복기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나도 죽지 않았고, 내 가족들도 죽지 않았으며, 여자친구도 죽지 않았다. 내 친구들 중 누구도 죽지 않았고. 직장 동료들도 죽지 않았고, 친척들도 죽지 않았다. 선배나 후배도 죽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는 어느 희극인이 세상을 떴다. 나는 그녀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어쩐지 한때 친하게 지냈던 중학교 동창을 잃은 것만 같았다. 한동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뉴스기사에 첨부된 얼굴을 보는데 마치 내가 그녀를 잘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슬픈 소식은 개연성 없이 왈칵 날아들곤 한다. 인과관계라는 게 없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종이에 손을 베이는 것처럼 그냥 대뜸 내 눈앞에 놓인다. 그렇게 난데없는 비보를 접한 후에야 나는 비스듬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죽음과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토록 말끔한,     


‘도시’라는 곳에는 도무지 죽음이 없다.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죽음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는 전쟁도, 장애도, 병(病)도 도무지 없다. 생로병사를 완전히 제쳐둔 채로 단정하다. 출생의 장면도 죽음의 장면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극히 노쇠한 사람들은 배제되어있고, 아픈 사람들은 집 밖에 나다니지 않거나 아픈 사람들끼리 모인다. 모두 어딘가에 유폐된 채로 말끔히 덮여있다.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꺼림칙해질 때가 있다. 죽음의 소식으로 가득하던 화면이 지나면, 누군가는 죽음과 무관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세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나오다가, 또 어떤 화면에서는 누군가가 구속되고 있다.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처음 만난 사람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질문을 던지며 간질간질 썸을 타고 있다. 이 전환은 불과 몇 초 만에 벌어진다. 각자 열심히 존재하는데도 채널을 돌리지 않으면 다른 세상은 영영 알아챌 수가 없다.     


눈을 바깥으로 돌린다. 몸을 일으키고 집밖을 나서면, 보이는 것은 온통 일이다. 내 하루의 움직이는 동선에는 오로지 노동으로만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사연을 숨겨둔 채로 분주히 움직인다. 그 고단한 노동과 함께, 드러나는 것은 온통 돈과 관련된 것들이다. 생로병사가 가려진 곳에서 사람들이 돈을 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번거로운 것들을 감추고나니 추잡한 것만 드러나는 셈이다.     


오늘은 전쟁도 없고, 죽음도 없고, 장애도 없고, 병도 없어서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이렇게나 평화로운 하루의 뒷골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 한 번을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몽땅 보냈다. 이제야 나는 워드프로세서의 흰 여백 앞에 앉아서 오늘을 복기하고, 찾아드는 감정을 조용하게 옮긴다. 글자를 타이핑하는 방은 한계 없이 평화롭다. 나는 나에게 계속 묻고, 혼자 생각에 잠긴다. 더듬더듬 쓴다. 오늘 하루 어땠니. 잠잠고민한다. 한줄의 대답과 질문만 남는다.


먼데서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행입니까. 불행입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술 취한 김에 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