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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27. 2020

잘 하는 남자

- 섹스를 못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이 모이면 으레 여자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성장기. 호르몬이 막 폭발하기 시작하던 즈음에 만난 친구들하고는 더 숨길 것이 없어진다. 오랜만에 만나 방이라도 잡고 밤새 술을 마실 때면 근황부터 시작해서 여자에 이르는 대화 루틴이 매번 반복됐다. 소개받은 여자 얘기, 옆 부서 동료와의 썸 얘기, 친절한 편의점 직원 분 얘기, ‘틴더’같은 어플에서 누구를 만났다는 얘기… 이런저런 소재로 이야기가 밤늦도록 이어지곤 했다. 이야기의 종착역은 보통 이런저런 섹스얘기인데, 대화의 비중은 일정했다. ‘좋았던 섹스’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나의 역량 때문에 좋을 수밖에 없었던 섹스’ 얘기가 압도적이었다. 스스로 섹스를 못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군대 썰과 섹스 썰의 공통점이 있다면 사실과 거짓이 뒤죽박죽 섞여있어 그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었다는 고생담은 언제나 횟수와 강도의 함정이 있다. 한 번 있었던 일을 늘상 있었던 것으로 꾸민다든가, 실제보다 그 상황을 과장해서 말하는 식이다. 섹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면서 꼭 이것저것 과장한다. 침대위의 메시, 오관육참 관우의 적토마, 코리안 시미켄(남자AV배우)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허풍들을 듣고 있다 보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다가도 실제로 그런가 궁금해질 때도 많다.     


남자가 남자하고 섹스얘기를 할 때 뻔뻔해지는 것은 사실 조금 이해가 간다. 이성애자인 이상 서로 간에 절대로 섹스를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잘해? 이리 와 나랑 한 번 해봐.” 라고는 말할 수가 없으니 검증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 서로의 집에 절대로 갈 수 없는 사람들끼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고 말하는 격이다. 그러려니- 믿어주거나, 알아서 걸러 들을 수밖에 없다.     


사실 평균의 바운더리에 충실하게 들어가는 사람들이 유독 잠자리에 능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다들 평균 정도겠지. 평균적인 사이즈를 가지고 있고, 평균적인 시간동안, 평균적인 자세로, 평균적인 섹스를 하겠지. 하필이면 이 자리에 침대위의 메시, 적토마, 시미켄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일 수가 있겠어.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   


“나보고 그러더라고. 처음으로 느껴봤다구.”

“야. 나는 여자를 무조건 두 번은 ‘보내고’ 난 다음에 끝내.”

“나는 전 여친도 전화오드라. 다른 건 잊어도 그건 못 잊겠다고.”

“나랑 잤던 모든 여자가 나보다 잘하는 남자 본 적 없다던데?”     


이런 얘기들이 이어질 때마다 ‘잘한다는 건 뭘까?’ 생각한다. 수없이 재시작이 가능한 체력일까, 섣불리 마무리하지 않는 지연능력일까, 크기와 강직도일까. 자유자재로 전희와 후희를 진행하는 공감능력과 자상함일까, 창의력일까, 잘생긴 얼굴일까, 능수능란하게 야한 멘트를 내뱉는 말빨일까, 아니면 테크닉일까.     


나름대로 여자들과 섹슈얼한 얘기를 할 기회가 생기면 물어보기도 했다. “여자 입장에서 잘한다는 건 뭐니?” 그렇게 물으면 여자애들도 나름대로의 경험을 얘기해주었다. 잘생겨서 얼굴만 봐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든가, 벗겨보니 웬 몽둥이가 있었다든가, 오뚝이처럼 금방금방 장전이 돼서 밤새도록 가능했다든가 하는 얘기였다. 그런데 웬걸, 그런 이야기들도 어쩐지 ‘잘 하는 남자’ 스타일로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근데 남자들이 나한테 항상 그러던데? 내가 다른 여자애들이랑 진짜로 뭔가 다르다고.”     


여자들은 대체로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썸띵 스페셜한 색기’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자애 앞에서 나는 호오... 하는 표정으로 끄덕끄덕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남자들의 입 발린 말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오빠 최고였어.” 하는 여자들의 칭찬이 언제나 진실이 아닌 것처럼, 남자들도 그런 말을 하니까.     


세상의 모든 ‘잘 하는’ 남자, 여자들과 자볼 수 없다는 건 애석한 일이다. 진짜로 적토마인지, 썸띵 스페셜한지는 평생 알 수 없다. 사실 안타까워할 일도 아닌 것이, ‘잘한다는’얘기는 그냥 어른들의 농담이 아닌가 싶다. 검증할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일은 즐거우니까. 서로에게 허풍을 치고, 반응을 살피고. 재밌어하고 그러는 거겠지.     

 

작가 마광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책을 썼는데, 나는 야한 얘기가 좋다. 잘한다는 허풍 듣는 것도 좋아한다. 평균의 섹스를 할 만한 평균의 사람들이 야심차게 내뱉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솔깃하게 듣게 된다. 잘한다는 건 뭘까. 자주 궁금해진다. 잘한다는 경험들을 듣고 있으면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스스로 섹스 못한다고 하는 얘기도 듣고 싶다. 모두가 섹스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툴고 어설픈 일화들이 오히려 더 재밌을 텐데 대체로 그런 방면에서는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쉽게도 나는 진짜 잘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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