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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31. 2020

새해에는 오로지 건강을 기원하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곧 새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진작 시작됐다.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줄곧 이맘때 이런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정작 연말이 되어 새해를 앞두고서는 연초에 받기로 한 그 새해 복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올해, 복을 많이 받았을까.    

 

돈이 많이 들어왔는가 묻는다면 숨이 턱턱 막히게 쪼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았다. 근근이 먹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좋은 관계가 유지 되었는가 묻는다면 딱히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로 영원히 의절한 사람도 없었고, 기억나리만치 심각하게 싸운 적도 없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조금씩은 있었던 것도 같지만 피부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들을 자주 만났고, 좋은 사람과 연애도 하게 되었고, 가족과도 변함없이 지냈다.

올 한해 건강했는가. 묻는다면 대체로 그랬다고 대답할 수 있다. 다만 건강할 때는 그 행복을 실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내 또래가 건강하기도 해서. 특별한 행복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를 감사히 여기고 싶다는 생각만 남는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이 뒤숭숭한 시국에 몸 건강히 굶지 않으면서 좋은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했다는 것으로 올 한 해 새해 복 많이 받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결국 비교점을 어디에 둘 것이냐는 문제인데, 어찌보면 손쉬운 안도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조심스럽다. 부실한 밥상 앞에서 “아프리카에서는 굶는 사람들도 많아.” 비교하는 게 초라한 정신승리이듯, “이만하면 행복이지.” 억지로 꾸며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한편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조금 건조하게 들릴 때가 있다. 무차별적으로 교환되는 새해 복에 대체로 ‘도시적 행복’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렇다. 돈 잘 벌고, 출세하는 행복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아닌가. 모두가 이런 종류의 새해 복을 받게 된다면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의 월급이 백만 원씩 오르면 그대로나 마찬가지인 거니까. 모두가 부자인 세상은 아무도 부자가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물질적이고 상대적인 행복은 언제나 누군가의 불행을 담보로 하는 것 같다.

    

다가올 새해에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로지 건강을 기원하겠다. (의사들이 길바닥에 나앉겠다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과 비교할 것도 없이, 아프지 않아서 그게 행복인 줄도 모르는 상태로 2021년을 보내기를 바란다. 찾아보니까 복(福)이라는 한자에는 ‘제육과 술’ 이라는 뜻도 있더라. 애초 복이라는 글자가 술과 고기로 제사를 지내며 좋은 운을 기원하는 모습을 담은 글자라서 그렇다고 한다. 건강한 몸으로 맛있는 고기와 술 마시는 것 만한 행복이 어디 흔한가. 행복이 고기와 술이라고 이해해도 납득할 만 하겠다.   

   

좋은 고기와 술을 마시면서, 가끔씩 닥쳐오는 슬픔을 이겨내고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나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나의 인사에 이런 뜻을 담기로 했다. 내 인사가 미치는 되도록 많은 분들이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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