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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17. 2021

키스는 왜 입술로

키스에 관한 쓸데없는 생각

키스를 생각하면 조금 신기하다. 키스는 입술이랑 혀로 하는 건데, 어쩌다가 입술이랑 혀를 부비적거리는 게 만국 공통의 애정표현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건 섹스랑은 좀 다르다. 섹스는 쾌락행위이기 이전에 번식행위이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강제된다.      


일본의 창조신화에 따르면 일본의 국토는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의 섹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자나기가 이자나미에게 네 몸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묻자, 이자나미가 대답한다. "내 몸에는 덜 채워진 곳이 있어." 그러자 이자나기가 말한다. "내 몸에는 튀어나온 곳이 있어, 우리 이걸 합쳐보자." 둘은 약속을 잡고 만나서 서로의 것을 맞춰 본다. 그들에게서 일본의 섬들이 탄생한다. 말하자면 일본을 섹스해서 낳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과정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깨우친 섹스의 발명설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남녀는 서로의 상이한 신체적 특징과, 원초적 욕망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끌렸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섹스를 좋아하게 태어나지는 않았겠지만, 섹스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선택에서 배제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는 이 세상에 섹스 좋아하는 사람만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키스는 조금 다르다. 키스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번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스킨십이라고 해서 꼭 입술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어찌 보면 입은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하는 기관이므로 키스까지 하기에는... 업무가 과중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키스를 했다.      


춘향전에서는 이몽룡과 성춘향이 입을 맞추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양반이 상민의 아녀자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든가, 궁녀들끼리 혓바닥을 빨았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지금의 프렌치키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키스가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에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는 문장이 나오지 않던가. 스님이 키스를 했단 말이야?! 무척이나 놀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섹스까지 해서 애도 있으셨다. 이런. 배신감 적지 않게 느꼈다.      


하필 왜 입술일까? 개인적으로 가만히 생각해본다면. 조상님들끼리 그냥 이것저것 다 잡아보고, 문질러보고, 비벼보고 했는데 입술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입술은 부드러운 데다가 피부 층이 얇아 예민한 촉각을 가지고 있고 따뜻하니까, 그냥 입술끼리 닿는 게 가장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키스하며 살았겠지. 키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키스를 경험한 사람이 많아지고, 여기저기서 기술이 전수되고, 문화적인 영향으로 퍼지기도 하면서 지금의 표준화된 키스가 정착됐을 것이다.      


그게 키스야? 승맹아. 그게 키스야? 키스란 건 말이야. 봐바. 입술이 딱 붙잖아. 걔 혀, 니 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온다고. 스르르 들어오는 거야 뱀처럼. 알지? 스네이크. 만나. 자연스럽게 일케. 뭐. 되겠지. 섞여. 하나하나. 하나가 되는...     
비벼! 막 비벼- 이렇게 존나 비벼-! 존나 비벼 일루갔다절루갔다앞으로갔다뒤로갔다 존나 비벼. 막!! 비벼-
환상-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가 승민이에게 키스를 알려주는 장면은 언제나 우습다. 나의 첫 키스를 떠올리면, 사실 환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 우주선에 올라탔어. 우주선이 막 진동해. 쿠구구구구과과광 떨려. 그리고 우주선에서 연료가 뿜어져 나오며 출발하기 시작해. 우주선이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면. 그때 네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신기할 거 같아.” 하고 말했다. 친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게 첫 키스할 때 네가 느낄 기분이야.”      


당시에는 웃어넘겼는데, 실제로 그랬다. 나는 ‘환상적이다!’, ‘너무 좋다!’는 느낌보다는. 단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엇. 이게 키스라는 거구나. 나도 키스를 하는구나. 신기하다!! 얘는 처음일까?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들과 함께 신기한 감정으로 첫 키스를 했다. 왜 입술일까? 생각했던 것도 그때였고, 아 역시 입술이구나! 생각했던 것도 그때였다. 귀를 부비는 아프리카 부족, 팔꿈치를 문지르는 북유럽 민족, 코끝을 가만히 대고 있는 고대 동양인을 상상해보았다. 무지막지하게 침을 흘리며 혀를 섞어대는 키스보다 오히려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기분은 키스가 제일 좋을 것 같았다.


어쩌자고 키스 얘기를 적는지 모르겠다. 그냥 “왜 입술일까?” 궁금해하는 기록이다. 1월 동안 일주일에 3편의 글을 업로드하기로 개인적인 다짐을 했다. 신년계획인 셈인데, 쓰려고 앉아서 쓸 말이 없다보니 키스 얘기 쓰게 된다. ‘왜 입술인가.’에 대해 연구된 바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듣기에는 보노보 침팬지도 키스를 한다는데, 그 정도면 그냥 부드러운 것을 좇는 게 타고난 본성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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