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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24. 2021

월요병보다 수요병

세상을 감각하는 습관

스티비 원더의 <Part Time Lover>를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물론 많겠지만, 막상 노래를 들려주면 대부분이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개그콘서트가 끝날 때 이태선 밴드가 연주하던 노래이기 때문이다. 뚜뚜뚜- 뚜뚜뚜 뚜루두- 뚜뚜뚜- 뚜뚜뚜 뚜루두- 그러고보면 온가족이 모여 보던 개그 프로그램의 엔딩송이 ‘파트 타임’으로 밤에만 만나는 (은밀한) 애인에 대한 노래였다는 것이 조금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신나는 멜로디와 리듬과는 달리 이 노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즐거움 보다는 절망을 주었다. 개그콘서트와 함께 2000년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엔딩곡이 나올 때 비로소 주말이 종료되고 한 주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각해보았을 것이며, 그 중 많은 수는 뒤따르는 절망감에 몸을 비틀어도 보았을 것이다. 


월요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시기도 아마 그 즈음이었던 듯하다. 그 말이 네이버 오픈사전이나 위키백과에 등재되어 있다는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언어가 생기면 증상을 앓게 될까, 증상이 생겨서 언어가 만들어질까. '월요병'의 경우 대다수가 명칭 없이 증상을 앓고 난 후,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언어가 증상을 발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월요병은 주말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만 하는 이들의 절망을 담고 있으면서, 그 고단함을 내세워 어리광부리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해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요즈음의 나는 월요병보다는 수요병으로 힘들어한다. 월요일에는 오히려 가뿐하다. 주말에 대단히 무리를 하는 경우도 없고,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한 탓에 에너지가 오히려 충분한 기분이다. 왜 군대에서도 고된 훈련 중에 꼬박꼬박 10분씩을 쉬게 했는지를 요새 더 실감나게 느낀다.


그에 반해 수요일은 어떤가 하면, 먼저 이틀치의 에너지를 소비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을 지나면서 주말동안의 휴식이 무용지물이 된 데다가 토요일도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기분이다. 앞으로든 뒤로든 별로 기댈 곳이 없다. 목요일만 되어도 '유사 금요일'의 기분이 슬슬 나지 않나. 수요일은 지나온 일요일, 다가올 토요일이 모두 아득히 멀어진 기분이라서 좀처럼 흥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이제 내가 월요병을 앓지 않는 것은 단순히 주말 내 잘 쉬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내 몸 상태를 더 잘 느끼고, 감사할 일에 충분히 감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몸 상태가 좋건 나쁘건 일을 하는 것이, 그리고 새로운 평일을 견뎌내는 것이 마냥 싫었다. 내 컨디션이 어떠한가를 가늠해보지도 않고, 평일이 되면 짜증부터 냈다. 이제는 쉽게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최악의 몸상태가 아니라면 '이만하면 괜찮네.' 되뇌어 본다.'잘 쉬었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지. 생각보다 피곤하지는 않네.' 생각하면서 힘을 내본다.


월요병을 수요병으로 늦춘 것 만으로도 조금 희망적이다. 어쩌면 이 수요병 마저도 어떤 새로운 즐거움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월화수목금토일 매 요일마다 기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가 되기 위해서 천천히 노력하고 싶다. 막연히 생각해보건대 언젠가는 가능할 것도 같다. 세상을 감각하는 방법은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니까. 스티비 원더의 '파트타임러버'가 언젠가는 나에게 절망을 주는 노래였지만, 이제는 나를 들썩이게 하는 명곡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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