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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pr 09. 2021

어 뭐지? 다들 늙는다

화창한 봄날과 흐르는 시간

나이가 들고 있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늙어가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요즘에는 어떤 실감이라는 게 난다. 새파란 나이에 무슨 나이타령이냐고 말 할 사람도 있겠으나, 올해 서른이 된 나는 지금 나이가 조금 많아졌다고 유세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실감의 순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사람 주변의 세상은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 같다. 한 사람은 물리적 공간과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 닿아있는 사람들과 덩어리로 붙어서 나이가 든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생 때는 모두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이었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자들의 부모들이었고, 대학 입시를 바라보는 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상은 오로지 대학으로만 가늠되는 것만 같았다. 대학, 대학, 대학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이가 들어 스무살을 통과했고, 그때부터는 아무도 대학, 대학 거리지 않게 되었다. 대신 주변의 누군가는 사랑, 사랑, 사랑을 외쳤고, 형들이, 친구들이, 하나둘 군대, 군대, 군대로 떠났다. 그러니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모두가 사랑을 하고 군대를 가고 있었다. 그 즈음에도 누군가는 부동산을 하고, 누군가는 질병을 앓고, 누군가는 대학 입시에 목매고 있었으나,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모두 딴 행성의 일처럼 무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는 주식, 주식, 주식의 세계로. 결혼, 결혼, 결혼의 세계로, 코인, 투자, 부동산의 세계로, 영양제, 취업, 이직의 세계로, 나는 숨 가쁘게 놓여있다. 어느 하나 안정된 것 없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나서 거울을 봤을 때,


어 뭐지?


조금 늙어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인스타 피드를 내렸는데, 생생하게 뽀송하던 대학 동기들, 후배들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다. 가봤어? 해봤어? 먹어봤어? 물으면 “아니?”가 자연스럽던 신입생 시절의 친구들도 경험 많은, 사회의 일원이 되어있다. 내 주변의 모두가 어린 시절의 시선으로 보았던 영락없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문득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나이가 들고 있다. 내 생에 단 한 번도 늙어가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요즘에는 어떤 실감이라는 게 난다. 이러다보면 출산, 육아, 퇴임의 세계로, 죽음의 세계로, 내가 속한 덩어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기분이 드는 때는 종종 있다. 막을 수 없는 강물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우리의 생이란 이렇게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의 날씨에, 역설적으로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아쉬움일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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