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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04. 2021

‘벨튀’를 할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지

삶을 살면서도 그래야 한다

놀거리가 없어 돼지 오줌보를 차며 놀았다는 어른들도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도 따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튜브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 밖에 나가 매미를 채집하거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무료함에 친구들과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 각종 아파트의 경비시스템과, CCTV의 발달로 이제는 종적을 감춘 ‘벨튀’는 그렇게 무료했던 우리에게 짜릿한 스릴을 전달해주는 액티비티 중 하나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일. 잔잔한 타인의 일상을 파괴하는 기쁨을 이제는 크게 공감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교양도, 공감능력도, 지식도 모자란 어린아이여서인지 그게 그렇게나 즐거웠다. 누군가 대문 밖으로 걸어 나와서 “너 이 녀석들!” 소리라도 질러주면 두려움인지 환희인지 모를 기분이 온몸으로 가득 찼고, 잡히지 않기 위해 내달리는 뜀박질에도 신명이 났다. 주택가를 도는 게 따분해지면, 경비라곤 없는 복도식 아파트에 들어가 한 라인의 초인종을 순서대로 누르면서 도망치기도 했다. 당시에는 남의 애라도 적극적으로 훈육하는 것이 통념상 허용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잡힐 때의 리스크가 무척이나 컸으므로, 짜릿함도 더 컸던 것 같다. 


‘벨튀’를 할 때는 꼭 지켜야하는 금기가 있었다.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는데, 첫째는 달리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다는 것이고(잡힐 수 있다.) 두 번째는 얼굴이 노출되어 후환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벨튀’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자신이 어디쯤 멀어져 있는지, 집주인의 표정은 어떤지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나도 뒤를 돌아보다가 드물게 잡힌 적이 있었다. 아줌마들은 보통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소리를 한 번 지르고 마는데, 재수 없게 다혈질 아저씨를 만나거나 혈기왕성한 중고등학생 형들을 만나면 추격전이 벌어졌다. 아무리 저학년의 초등학생이라도 시간차가 충분해서 잡힐 일은 없었지만 가끔씩은 여유를 부리거나 뒤를 돌아보다가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세게 꿀밤을 맞거나 걷어차인 적이 있었다. 먼저 도망쳐서 숨어버린 친구를 야속해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굳이 벨튀가 아니더라도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계에서 에우리디케를 구출하려던 오르페우스 역시 동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겼다가 사랑하는 연인과 영영 이별하지 않았던가. 하늘을 나는 새도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꼭 뒤를 돌아보거라’하는 금기는 없어도 세계 곳곳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는 흔하게 있다. 초인종과, ‘벨튀’가 없던 고대부터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사람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모양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후회를 의미한다. 후회는 무엇을 방해하는가. 후회는 전진을 방해한다. 전진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현재에 머무르게 되며 종국에는 과거에 갇히게 된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쟁기를 잡았으면 앞을 쳐다 보며 밭을 갈아야지, 뒤를 돌아봐서는 농사일을 그르친다는 뜻일 테다.  


내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많다. 내 손에는 쟁기가 쥐어져있고, 시간이라는 소는 앞으로 뚜벅뚜벅 쉴새 없이 걸어가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앞을 보면 고랑이 삐뚤빼뚤하다. ‘벨튀’할 때도 이러다가 잡혔었는데, 오르페우스도 이러다가 연인을 놓쳤었는데. 뒤를 돌아본다는 일이 문득 무겁게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를 떠올리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나아가면 다시 원점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앞을 바라보는 것. 착잡한 마음을 글로 남기는 일뿐이다. 그래도 힘을 내보겠답시고, 위로를 해보겠답시고. 어떻게 앞만 보며 갈 수 있겠어요. 가끔은 돌이켜보고, 실수를 복기도 해야지. 다만 중얼거릴 뿐이다.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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