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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28. 2021

글쓰기가 늘지 않는다

매일 이를 닦는다고 해서 양치질이 늘지 않고, 매일 젓가락질을 한다고 해서 젓가락질이 더 늘지 않듯, 글을 꾸준히 쓴다고 해서 글쓰기가 착실히 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에는 글쓰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꽤 많은 글을 써온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제자리걸음이다. 더 편해진다거나, 쉬워진다거나, 능숙해진다거나 했으면 좋겠는데, 어렵게 어렵게 그저 그런 글들이 써진다.


백지의 공포라는 말이 있다. 모든 작가들이 모두 빈종이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인데, 가끔 보면 그게 다 기만 같다. 백지가 두렵다면서 멋진 글들을 줄줄 써대니, 진짜로 그런 걸 느끼기나 하는 것인지 믿음이 안 간다. 자기 과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은 나도 쉽게 쓰는 거 아냐’ 괜한 엄살을 부리면서 자신의 수고를 과장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자극이란, 그리 다양하지 않은 것 같다. 테니스 선수가 팔꿈치에 부상을 입고, 야구선수가 햄스트링을 다치듯, 글쓰는 사람도 항상 일정한 부분에서 국소적인 상처를 받는 것 같다. 글쓰기의 동력이라는 것이 자주 겹친다. 그래서 맨날 비슷비슷한 글들을 써내게 되는 것이다. 같은 말도 다르게 쓴다면 새로운 글이라 할 수 있겠지만 같은 반찬 먹는 것처럼 물리기도 한다. 비슷한 글들을 자꾸 써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다. 나는 김영하 작가나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들의 글에는 핵심이 뚜렷하면서도 에둘러가는 매력이 있다.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늘어놓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핵심으로 도달하는 전개가 흥미롭고, 무척이나 힘이 있다. 나는 그런 글쓰기를 자주 따라해보곤 한다. 영락없이 모자란 완성본이 나온다. 그럴때마다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 글쓰기란 참 늘지 않는구나.


꾸준히 쓰기도 어렵다. 나보다 훨씬 글쓰기에 게으른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방만한 글쓰기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면서,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편. 가끔은 억지로 쓰기까지 한다. 그럴 땐 우습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억지로 글 쓰는 꼴이라니.


요즘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근육은 정말 더디게 붙는다. 웬만큼 운동을 해서 팔뚝과 가슴이 빵빵해지는 것도 잠시. 하루가 지나면 금세 쪼그라든다. 매일매일 그 몸이 그 몸이다. 말하자면 나의 글쓰기처럼 정말 더디게 는다. 무엇이든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법은 없구나. 잠깐 부처가 되어본다. 하지만 깨닫는다고 해서 더디게 실력이 느는 괴로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까지 완벽한 글 한 편을 써낼 수 있을까. 누가 보아도 인정할 만한. 잠시 숨을 멈출 만큼 깊고, 재미있고, 유려한 글을 써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한동안 멍해진다. 그런 글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렵다.


글쓰기가 늘지 않는다. 글쓰기가 어렵다. 글쓰기가 괴롭다. 가끔은 글쓰기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비참은 어느 정도의 우울함을 동반한다. 깜빡거리는 커서가 나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흰 바탕의 워드프로세서 화면이 한없이 막막한 백색의 우주 같다. 나는 <그래비티>의 주인공처럼 우주에서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닌다. 중력도 없는 공허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 오늘밤 나를 구원해줄 문장은 요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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